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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탄생

86. 음악 이야기

by 판도




저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책을 읽을 때도 글을 쓸 때도 일을 할 때도 휴식을 취할 때도 술을 마실 때도 잠을 청할 때도 음악을 곁에 둡니다.

노래를 즐겨 부르고, 듣는 것도 좋아합니다. 다만, 음치에 박치라 그냥 혼자만 좋아라 부르는 편입니다. 만약 노래를 조금이라도 잘했다면 허파에 바람이 들어 가수가 되겠다고 난리를 쳤을 겁니다. 신의 배려에 감사 드립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식당을 처음 시작할 때 무엇보다 가슴이 설렜던 건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제가 일하는 식당에서 마음껏 틀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저작권 문제로 멜론을 구독하여 때와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선곡했습니다.

물론 기존의 고정관념,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노래 선곡의 제약이 있을 거라는 것 정도는 예상했습니다. 낙지집에서 무슨 재즈며 클래식이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은 사람 저마다의 자유지만, 저는 그런 사람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식사에 방해가 되는 음악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틀에 박혀 사는 삶은 재미가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는 가요와 클래식, 재즈, 가곡 따위이고 헤비메탈류의 음악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노래는 트로트와 댄스 뮤직, 힙합, 뭐 이런 종류입니다.


개업 초에는 술과 요리도 팔았지만, 그렇다고 여느 술집처럼 시끄러운 노래를 마구 틀어댈 수는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초능력자의 허락을 받고 조용한 가요 위주로 살살 틀었습니다. 물론 손님들은 낙지집에서 음악 자체가 흘러나오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반응이 나빴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게가 오픈한 것이 2월인데 당시에는 봄노래를 많이 틀었습니다. 그러다 여름 가을 겨울 노래를 계절의 흐름에 맞춰 틀었고, 크리스마스를 두 달 앞둔 10월부터는 그 어느 곳보다 먼저 캐럴을 신나게 틀었습니다. 호주에 살 때,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에도 불구하고 10월부터 캐럴을 들을 수 있었거든요. 그것을 따라 했는데 손님들의 반응이 놀라웠습니다. 요즘 캐럴 듣기 쉽지 않은데, 이 식당은 별나다. 듣기 좋다. 옛날 생각난다 등 모든 분이 호평을 해주셨습니다. 모두가 즐거워하셨습니다.


비가 내리면 이문세의 '빗속에서'를 틀었고, 눈이 내리면 조하문의 '눈 오는 밤'을 틀었습니다. 저녁이면 마일스 데이비스의 노래를 틀었습니다. 손님보다 제가 먼저 분위기에 취했습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브레이크 타임이 없던 시절, 점심 피크 타임이 지나고 할배들이 오면 그들을 위해 흘러간 옛 노래를 틀어 드렸는데, 이분들이 노래에 취하고 술에 취하여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겁니다. 그분들께는 미안하지만, 효율이 너무 떨어져 결국에는 점심 영업을 한번 끊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브레이크 타임이 없던 시절, 여러모로 참 힘들었네요.






그런데 저라는 인간이 참 간사합니다.

일에 지치고 똑같은 일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슬슬 노래를 트는 것이 귀찮아졌습니다. 한편 초능력자와의 취향 차이로 제가 좋아하는 음악만을 틀 수도 없었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음악 선곡이 게을러지기 시작한 겁니다. 결국 식사에 방해가 되지 않는 노래, 보컬이 들어가지 않은 심심하고 조용한 음악 위주로 아침에 선곡하고 점심과 저녁 시간에 틀어 놓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손님들을 위한 음악 선정에 무뎌져 갈 무렵, 저는 무선 이어폰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만나게 되었고, 주방에서 조리를 하며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고 컨디션이 좋을 때면 이북을 듣고, 힘이 들 때면 신나는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홀 음악에는 무심하게 된 거지요.






음악이 어울리는 고상한 식당이 따로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별이 몇 개 달려야만 고상한 식당이 아니고, 그런 식당만이 음악이 어울리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틀에 맞추어 살다 보면 정신과 육체의 성장에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생각해 보면 낙지집에서 재즈를 튼다는 것은 하찮은 일입니다. 어느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을 일입니다. 따라서 식당을 경영하며 굳이 음악에 목숨 걸 이유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나, 잘 고른 음악이 내가 밥을 먹는 시간에 은은히 실내에 울려 퍼지면 식사의 기쁨은 분명 배가 될 것입니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도 아니기에 이건 뭐 상술도 뭣도 아닙니다. 사장의 취향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손님의 편안한 식사를 위해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것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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