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식당의 탄생

88. 살아가는 이야기

by 판도



아침 5시 30분 지하철 첫차를 탑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습니다. 아마도 저처럼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어쩌다 맞은편 자리의 사람들을 보기도 합니다. 새벽잠을 설치고 나온 그들의 고단한 모습이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그들 모두, 우리 모두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치기를 기도하며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요즘 날씨 참 덥습니다.

이럴 때 불 앞에서 일하는 사람은 곤혹스럽습니다. 식당도 그렇습니다. 저희 식당의 주방은 아주 비좁고 작습니다. 제가 불판 앞에서 웍질을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주방의 크기가 협소합니다. 또 주방에는 창문도 없기에 환기도 잘 되지 않습니다(덕트는 당연히 있습니다). 선풍기가 있기는 하지만 조리를 하는 불판 쪽으로는 바람이 가지 않아야 하기에 그 사용마저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주방 온도가 여름에는 40도에 육박할 만큼 더워서 에어컨을 설치하려고 했지만, 조리 시 발생하는 유증기와 화구의 열기 때문에 에어컨이 금방 망가져 버린다고 설치 기사님이 에어컨 설치를 만류하였습니다. 그냥 싸워서 이겨내거나 친해져 사이좋게 지내거나 하라는 하늘의 뜻입니다. 여름은 그냥 더운 걸로.


아무튼 더위와 싸워야 하는 힘든 계절이 도래했습니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웍질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버립니다. 이 덥고 힘든 시절, 빨리 지나가면 좋겠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지나 보니 강물처럼 산다는 건 멋대로 살겠다는 것이었고, 그 강물이 큰 바다에 이를 때까지 무엇을 만나고 무슨 일이 생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강물처럼 살면, 강물에 몸을 맡기면 그럭저럭 흘러가서 넓은 바다에 닿을 줄로만 알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곧 바다가 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착각도 엄청 큰 착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강물로 살아 보니 깨달았습니다. 바다가 되기란, 바다를 만나는 것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때론 인간이 버린 폐수와 오물 덩어리를 만나 정신을 잃기도 하고, 때론 쓰레기 더미에 갇혀 멈추어버릴 때도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홍수에 물이 불면 미처 바다에 이르기도 전에 강밖으로 밀려나는 것도 몰랐습니다. 바위에 부딪혀 정신을 잃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기도 하였습니다. 생각한다고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 속으로는 번뇌와 고통을 품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보이는 게 다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혼자되기를 갈망하였기에 사람을 맞이해야 하는 식당을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가 식당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러니라는 단어가 있는가 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영업자가 되어 식당을 한다고 해서 꼭 꿈을 잃어버린 것일까 자문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세상의 번뇌는 언제나 어리석은 인간의 주위를 맴돌았지만, 식당은 회사라는 조직보다 좋은 것이 더 많았습니다. 대기업 오너처럼, 식당의 주인 또한 자신의 식당을 경영하는 오너였기에 멋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망하지만 않는다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시간을 잘 쪼개 쓰면 회사처럼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었습니다. 사장이라 가능한 일이었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식당의 이름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취향대로 식당의 안팎을 꾸밀 수가 있었습니다. 메뉴 또한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습니다. 낙지집에 무슨 우삼겹볶음이냐며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었지만, 생뚱맞은 우삼겹볶음을 맛있다고 먹는 손님이 하나둘 늘어나 효자 메뉴가 되어 주었습니다. 사람의 말에 덜 흔들리고 조금 더 뻔뻔해지면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이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팔랑귀는 나쁜 것이고, 줏대는 정말 좋은 것입니다. 신념 있는 인생이 후회가 덜합니다.


아침 6시에 출근하면 세 시간 동안 영업 준비를 합니다. 낙지를 손질하고 양배추를 썰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합니다. 이때가 무선 이어폰으로 이북을 듣는 시간입니다. 눈과 손과 몸으로 일을 하고 귀로는 글을 읽습니다. 준비가 끝나면 노트북을 켜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고 글을 씁니다. 간단히 아침도 챙겨 먹고 주식도 합니다. 영업 시간이 되어 웍질을 할 때도 무선 이어폰으로 소설을 듣거나 노래를 듣습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영화도 볼 수 있고 종이 책도 읽을 수 있습니다. 비가 내리면 속이 쓰리고 매출은 곤두박질치지만, 꾹꾹 눌러 놓았던 감성이 살아 움직이는 날입니다. 모든 시간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멍청히 시간을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힘들면 쉬면 됩니다.


초능력자와 상의하여 영업시간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으며, 일요일과 공휴일을 쉬면서도 토요일까지도 쉴 수가 있었습니다(오락가락할 때도 있습니다만). 물론 오지랖쟁이들이 무슨 식당이 이렇게 쉬는 날이 많냐며 성가신 참견을 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정녕 내가 될 수 없기에 무시하면 될 일이었습니다(개업하고 처음부터 이렇게 쉰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일요일만 휴무였으니까요). 다만, 놀다가, 쉬다가 식당이 망해버린다면 오롯이 저의 책임일 것입니다. 다행히 아직은 망하지 않고 그럭저럭 숨 쉬고 있습니다만. 많이 벌겠다는 욕심에 골병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적당히 쉬는 게 낫다고 생각하니 몸도 마음도 편해졌습니다. 내려놓기가 어렵지 막상 내려놓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 이치가 그랬습니다. 해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이 나면 실행에 옮겨야 세상 일이 변하는 법입니다. 실행에 옮겨 좋아지면 계속 밀어붙이고 나빠지면 되돌리면 됩니다. 물론 실행에 옮기기 전에는 숙고해야 합니다.






'이재, 곧 죽습니다'란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자살한 주인공이 죽고 살기를 반복하며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내용입니다.


마지막 화에서 주인공의 영혼이 엄마의 육신에 들어가 독백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전철을 타고 가며 말합니다.


'지하철 첫차에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우리의 부모님들이 계셨다. 이들 앞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열심히 살아보지도 않고 몇 번의 실패로 자살을 선택한 주인공이 자신의 어머니의 고단한 일상을 직접 대면하며 반성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어머니는 죽은 아들만을 생각하며 힘든 노동을 기꺼이 이겨냅니다.)



웹툰이 원작으로 과도하게 잔인한 내용에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지만, 아래 문장 하나로 치유가 되었습니다.


'죽고 나서야 알았다. 삶은 기회였다는 사실을.'


당연한 말이지만, 가슴이 뭉클해지더군요. 죽고 나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있어야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에 말이죠.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삶은 기회입니다.


드라마가 끝나고 엔딩에는 이런 자막이 나옵니다.


'당신은 이 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입니다.'


폭염 속에서 분투하며 2025년 7월의 여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당신, 당신은 이 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분입니다.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식당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