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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탄생

91. 사회적 공헌에 대한 이야기

by 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적 지위에 따른 도덕적 책임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프랑스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귀족의 지위는 의무를 동반한다'라고 나와 있네요.


언제부터인가 이 말을 들어왔습니다. 주로 부유한 사람들이 착한 짓을 할 때 이 말이 등장하더군요. 그런데 이 고상한 단어가 귀족의 특권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여론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귀족이 웬 말이고 왕, 여왕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말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호사가 好事家들의 허튼소리는 접어두고, 좋은 의미로만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을 생각해 보렵니다.


무리 속의 우월한 자들이 구성원을 위해 하는 모든 행위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런데 특권층의 사회적 책임만을 말하는 것으로는 뭔가 찜찜하고 섭섭합니다. 있는 자들이, 가진 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당연한 일이 멋진 일이 되는 것은 아주 이상한 일입니다.


사회적 신분이고 특권층이고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이건 그저 자신의 책임을 다하면서도 조용히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진정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영업자가 틀에 박힌 삶에 갇혀 지내면서도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여 봅니다.


식당을 시작하면서부터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습니다. 재료를 준비하여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맞이하고 정리를 하고 다시 이 순서를 반복하면서 몸만 바쁘고 힘든 것이 아니었지요.


손님을 기다리는 순간순간의 피 마르는 긴장감과 결국은 아무도 찾지 않았을 때의 허탈함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만인만색의 손님을 대하느라 지치고 피폐해진 영혼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여유를 잃어버렸습니다.


더욱 힘든 것은 순간의 휴식과 함께 여유가 찾아와도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불안을 동반한 휴식은 쉬는 게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정신없이 바쁜 것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손님이 찾아주지 않는 가게는 사장 혼자 아무리 법석을 떨어도 바쁠 수가 없고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그런 긴장감으로 숨이 막히고 몸뚱이가 터질 것만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며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고 그들을 돕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사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꿈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탄절이었습니다. 가게에서 손님을 대상으로 하는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구상하다가 더불어 불우이웃돕기 행사도 해보자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지요.


부부 둘이 조용히 할 수도 있지만 식당을 찾는 손님들과 십시일반으로 함께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시작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너무 티 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괜히 번거로운 일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구상을 접을까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조용히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강요할 것도 없고, 너무 소란스럽게 떠들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모금 기간 동안 참여가 없으면 그저 두 사람의 작은 성의만으로 불우이웃을 도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습니다.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저희 부부는 이 작은 일을 계기로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손님들이 조용히 호응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웃을 돕는데 쓰라고 내주시는 성금은 뜻밖에도 저라는 인간을 가난하고 메마른 마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큰일이 아니지만, 별 것 아니지만, 생각을 실천에 옮기면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남을 돕은 일이란 스스로를 돕는 일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을 돕는 행위로부터 가장 큰 행복을 얻은 자는 바로 저 자신이었으니까요.






타인을 돕겠다는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고 나서야 저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그것이 처음부터 나 자신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남을 돕는 일이란 스스로를 돕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죠.


한 달에 한 번씩 얼마라도 기부를 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 읽지도 않는 책을 꼭꼭 책장에 꽂아두고 고상한 척하는 마음의 허영을 떨쳐내는 용기, 결손 가정의 아이들을 위해 매주 한 번이라도 도시락을 준비하는 관심. 이런 작은 마음이 모여 사회적 공헌이라는 큰 산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작은 식당을 하며 깨달았습니다.


자영업자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그들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을 것입니다. 귀족이 아니라도 특권층이 아니라도 말이죠. 이웃을 돕는 일은 스스로를 돕는 일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시작하면 알게 됩니다. 사회적 공헌, 참 쉬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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