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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탄생

90. 요식업에 관한 이야기

by 판도


요식업은 화려한 직업이 아닙니다.



저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중국 청도에서 살았습니다. 가족은 저보다 1년 늦게 들어왔고요. 그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문호가 개방되고 중국에 처음 들어와 요식업으로 돈을 벌겠다는 한국인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에서 동쪽 연안의 대도시(바다에서 가까운 북경을 포함하여, 상해, 대련, 광주, 청도 등등. 청도는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지정학적 이유로)에 제법 그럴싸하게 식당을 차립니다. 십중팔구는 사업이 망합니다. 한국에서도 어려운 음식 장사가 체제, 사회, 문화, 관습, 법규 등 모든 것이 다른 타국 땅에서 쉽게 풀릴 리가 없습니다. 능력이 없거나 운이 없거나의 이유로 사업이 망하면 좀 더 내륙 쪽으로 들어가 다시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 사업이 또 망합니다. 그러면 다시 내륙으로, 한국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으로 유배를 가듯 찾아들어가 다시 사업을 시작합니다. 있는 돈을 다 싸들고 정을 떼고 한국을 떠나 왔기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결국 일가친척 한 명 없는 타국의 이름 없는 작은 마을에 갇혀 고립무원의 세상에서 빚을 갚으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연명하며 보냅니다. 희망도 꿈도 없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세상 어디서건 요식업의 시작은 창대하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고, 결과는 참혹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이건 막차를 타듯 식당을 창업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쫓기듯 시작한 식당은 돈도 벌지 못하고 골병만 들기 쉽습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다면 중년의 삶이 초라하고 답답해질 수 있습니다. 일단 몸이 망가지기 쉽습니다. 휴식 없는 생활이 이어지다 보면 정신도 피폐해집니다. 직장인처럼 저녁도, 주말도 없습니다. 쉬는 만큼 수익이 줄어듭니다. 몸으로 때워야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요식업이란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힘이 왕성할 때 하기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나이를 먹어서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동업종에서 경험이 차곡차곡 쌓였을 때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식당 일에 문외한인 사람이 나이 들어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요 며칠 내린 폭우로 장사는 폭삭 망했습니다.


(수해를 입은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학생 손님이 많이 찾는 식당이 여름방학을 맞이했으니 매출이 형편없는데 무더위에 비까지 퍼부으니 텅 빈 식당에 속절없이 에어컨만 신나게 돌아갑니다. 그런 외부적 요인에도 끄떡없는 식당이 부럽기만 합니다. 더 매력적인 식당을 만들어내지 못한 제 탓입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자영업자를, 요식업자를 살려야 한다는 요란한 公言이 허망한 空言으로 끝나기 일쑤입니다. 정부의 대책으로 망해가던 식당이 살아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정부의 도움으로 식당을 살려낸 사장의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곳이 있다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왔을 겁니다. 다 사장 본인이 정신 차리고 잘해야 합니다.


당연히 식당의 사장된 이는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탓으로 식당이 망하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드문 일입니다. 보통 내 탓으로 식당의 존폐가 갈립니다.






인근의 대학이 방학에 들어갔습니다.

오전 11시에 문을 엽니다. 직장인들은 대개 12시에서 1시까지가 점심시간이기에 가게에 손님이 몰리는 것은 12시부터입니다. 그러나 12시까지 손님이 없으면 불안합니다. 보통은 11시가 넘으면 몇 팀이라도 이른 손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12시가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어제 있었던 일을 복기합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하지 않았는지,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봅니다.


내일은 괜찮을 거야 하는 소리는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는 말일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매출이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피가 마르고 고통스럽습니다. 수명이 1초에 하루씩 단축되는 느낌입니다. 그럴 땐 일부러 몸을 놀립니다. 생각을 못하도록 합니다. 청소를 하고, 있는 재료를 찾아서 또 다듬고..,






창업 전에는 물론이고 창업 후에도 요식업과 비요식업 선배들의 책을 열심히 읽고 공부했습니다. 식당을 실제로 경영한 선배들의 책은 물론이고 식당 마케팅과 컨설팅으로 밥 먹고 사는 선배들의 책도 섭렵했습니다. 가게가 생각처럼 잘 안 되고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특히 선배들의 책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잘난 선배들에게 반항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다 맞지만, 그들이 그렇게 해서 성공한 것은 정말 맞는지, 다른 이유는 없는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고, 그렇게 하면 필망이라고 하는 것이 진짜일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듭니다. 그들 말의 이면에는 비약된 논리와 슬쩍슬쩍 옆사람의 말을 베낀 알맹이 없는 허무한 말의 성찬은 없는 것인지 의혹의 마음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그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요식업의 성공을 위한 기본 문법을 제시합니다. 물론 평범함 속에 진실과 진리가 담겨 있겠지만 먹종이를 대고 베낀 것처럼 똑같은 성공 십계명을 외칩니다.


맛은 기본이니 당신만의 차별화를 꾀하라고, 목숨 걸고 일하라고, 회계와 재무 관리를 철저히 해서 앞으로 남고 뒤로 까지지 말라고, 사람이 최고이니 내부 고객과 외부 고객 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시대의 패러다임을 읽고 넓은 시야 속에 디테일까지 갖추라고…


그런데 오늘 문득 의심의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손님은 왕이다'라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 식당에 가서 이런 말을 하면 진상 소리를 듣고 갑질을 한다고 욕을 하겠지만, 이런 말이 괜히 나왔겠습니까? 식당 사장 입장에서는 모름지기 그런 자세를 가져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고개 쳐들고 대드는 놈보다 허리 굽혀 자세를 낮추는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모든 인간의 본성이 그렇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사장이 못됩니다. 진상 손님을 못 참고, 갑질하는 손님을 내쫓는 고약한 식당 주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식당 일로 돈을 벌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라는 인간은 개에게나 줘버려야 하는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기 때문에 겉으로 사나운 척하지만 쉽게 상처 입고 쉽게 아파합니다. 간이며 쓸개며 다 내줘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합니다. 무릇 요식업자라면, 서비스업이라면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잘 알고 있지만 못합니다. 저라는 인간, 참 바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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