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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탄생

93. 새로운 탄생

by 판도


요즘 오늘도낙지는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탄생의 핵심은 메뉴를 간추리는 것입니다. 간소화했던 메뉴를 더욱 줄이는 겁니다.


저희 식당, 오늘도낙지는 낙지요리를 중심으로 한 해산물 전문점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추가한 생선카츠정식과 새우카츠정식 또한 많은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따지고 보면 생선도 새우도 해산물이네요). 뒤늦게 출시한 멘보샤(새우니까 또 해산물)도 사이드 메뉴로서 사랑을 받으며 당당히 한몫을 했고요.

그러나 이제 이 고마운 아이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려 합니다(판매를 중지하여 단종을 시키는 것인데 그렇게 말하기가 왠지 꺼려지는군요).


아무튼 이번의 새로운 탄생으로 저희 식당에는 달랑 세 가지 메뉴만 남습니다. 낙지볶음과 낙지순두부, 그리고 불고기덮밥입니다.


튀김류를 전부 없애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제 살을 도려내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따랐습니다(과장이 아니랍니다). 고통의 실체는 '미련'과 '걱정'입니다. 7년을 함께 하며 매출의 한 축을 담당해 준 메뉴를 없앤다는 '미련'이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매출을 성실히 도와준 메뉴를 없애고 나면 매출이 많이 떨어질 거라는 '걱정'의 공포가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이렇게 글로는 담담하게 쓰지만, 현실에서 다가오는 걱정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식당이 생업이기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걱정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키고자 하는 마음에 불고기덮밥이라는 신메뉴를 출시하였습니다. 일종의 타협입니다(낙지볶음처럼 매운 것을 못 드시는 분들을 위한 대체 메뉴라는 핑계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튀김요리를 큰 결심 후에 몽땅 없애버렸는데 생뚱맞게 불고기덮밥이라니요.

맞습니다. 타협이 맞습니다. 기존의 우삼겹숙주볶음을 대신 없앱니다. 사실 이 메뉴 또한 식당의 주 고객인 학생들이 무척 사랑한 메뉴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만들어낸 우삼겹 숙주볶음이라는 메뉴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우선 숙주라는 재료의 특성상, 보관성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하루라도 매출이 저조하면 바로 상해서 버려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 아깝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속상하다는 그 기분을 자주 느껴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기분을 매번 느끼게 하는 메뉴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제 마음속에서 계속 자라나 도사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이 메뉴는 조리성도 나빴습니다. 재료를 볶아 접시에 담는 일련의 과정이 효율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전부터 불고기덮밥이라는 대체 메뉴를 줄곧 생각하며 공부하였습니다. 불고기(우삼겹)를 메인 재료로 하고 거기에 들어가는 부재료를 연구하였습니다.


상추라는 신선한 생 채소를 떠올렸고, 기존의 낙지볶음에 들어가는 양배추와, 우삼겹숙주볶음에 들어갔던 양파를 불고기와 함께 볶아보기로 하였습니다. 더하여 병아리콩과 당면과 버섯도 함께 넣기로 하였습니다. 계란 노른자도 고명으로 얹었습니다.


재료 준비부터 조리까지 조금은 수고롭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불고기덮밥을 지난 월요일부터 출시하였는데 반응이 예상보다 좋습니다. 호평을 해주십니다. 물론 고객의 칭찬을 식당 주인은 경계해야 합니다. 무턱대고 믿으면 안됩니다. 일종의 립 서비스에 불과하니까요. 아무튼 시작이 좋습니다. 기존의 우삼겹 숙주볶음보다 판매량이 나으니까요.


이제 내일부터는 낙지볶음, 낙지순두부와 불고기덮밥의 세 가지 메뉴만으로 고객을 맞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있을는지 저 자신도 잘 모르지만 이 세 가지 메뉴로 식당의 몸집을 줄이고 보다 가벼운 모습과 마음으로 고객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이 새로운 탄생을 통하여 초능력자의 수고가 조금이나마 줄어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어제 인터넷 신문에서 읽은 글입니다.

글에 등장하는 형님과 형님 친구는 80대 남성입니다.


형님이 가볍게 물었다. “요새 뭐 하고 지내?” 형님 친구가 답변한다. “응, 작년에 하던 일 계속하고 있지!” 너무나 자연스러운 친구 대답에 형님이 궁리한다. ‘얘가 작년에 무슨 일을 했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영 떠오르는 게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묻는다. “응, 네가 작년에 무슨 일을 했지?” 형 친구 왈. “응, 놀았지!”


그저 웃음이 납니다. 형님 친구가 80대라 다행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슨 일을 하시나요?

혹시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계시지는 않는가요?

그렇다면 저는 여러분의 새로운 탄생을 축하하고 응원하겠습니다.

새로운 탄생과 새로운 출발이란 축하받아 마땅한 꽤 멋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80대의 아저씨라도 새로운 출발은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만 건강하면 나이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현역으로 각종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탤런트이자 영화배우인,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김영옥 씨의 나이가 (1937년생으로) 올해 88세이십니다.


저희 부부가 애정하는 식당의 새로운 탄생이 어찌 흘러가는지는 훗날 다시 글을 올려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입추가 지나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네요. 참 좋은 계절에 우리는 함께 서 있습니다.

당신과 저, 우리 모두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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