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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탄생

98. 일에 관한 이야기

by 판도



새벽에는 한기가 느껴질 만큼 선선한 공기, 청명한 하늘, 바야흐로 일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야외에서 몸을 쓰는 일을 하기에는 아직도 한낮의 태양이 뜨겁지만, 이 땅에 가을이라는 선물을 내려주신 절대자의 은혜에 새삼 감사할 만큼 낮의 기온 또한 조금씩 내려갈 것입니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 불리며 존경받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노동의 찬미와 같은 말을 지난 글에서 전한 기억이 있습니다.


“노동이 인격을 만든다. 성실하게 있는 힘껏 일하는 행위야말로 훌륭한 인격을 만드는 유일한 비결이다. 고생스러운 경험을 피하면서 훌륭한 인간성을 완성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브런치의 모든 작가님이야말로 훌륭한 인격과 인간성의 완성을 위해 정진하는 멋진 분들이십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던 시절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지금보다 열 배는 멍청했으니까요.

그저 사회가 요구하는 간판(대학 졸업)을 땄으니까 '마땅히', '도리 없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연하면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답답하고 한심한 인생입니다.


변덕이 심하고 의지가 약하다 보니 쉽게 일을 바꾸고, 또 새로 시작한 그 일에서 도망쳤습니다.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며 살아왔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맡은 일은 제법 열심히 했다는 것입니다.


변명을 하자면 멍청하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 싫었고, 멍청하게 그 일을 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선택한 일임에도 곧 그 일을 부정하고 변심을 합리화하며 새로운 일을 찾는 오류를 거듭했습니다.


그렇게 이십 대와 삼십 대를 지나 나이 마흔에 중국을 찾았고, 삶이 안정되는 순간 또 다시 호주로 떠났습니다.






지금은 이렇습니다.


철이 들었다기보다 또 변덕병이 도진 것인데, 그토록 일이 싫었던 사람이 이제는 일이란 죽기 전까지,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중년의 노동자가 청년의 노동력을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나이 듦에 비례하여 노동의 강도는 약해질 겁니다. 약해지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인간의 노동이란 굉장히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입니다.


노동이 없는 삶은 인간의 삶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죽은 인간의 삶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삶은 싫습니다.

인간의 삶이 비루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을 통하여 인간의 삶도 아름다워지면 좋겠습니다.

노동이 인간의 삶을 찬란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일하는 삶이 행복한 삶일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해야만 하는 일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죠.


기꺼이 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때론 하기 싫은 일을 했을 때 찾아오는 행복도 있더군요.


며칠 전, 전철 계단을 내려가다 바닥을 구르는 빈 음료수 용기를 보았습니다.


저것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쳐 버렸는데 바로 휴지통이 보이더군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렇다고 빈 용기를 주우러 다시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저걸 했다면, 행복했을 텐데', 아쉬워만 하고 말이죠.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하기 싫은 일도 때론 할 수 있는 (나태와 귀찮음을 이겨내는) 마음이 필요하다.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바보 같은 마음을 극복해야 비로소 스스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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