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가고 있는 중입니다만
고흥은 특별한 곳이었지만, 내가 그린 그림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의 모습에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난 도대체 무엇을 바랐을까?
이런 생각도 해본다.
귀농귀촌 프로그램을 통하여 처음 고흥을 접했다면 훨씬 긍정적이었을 거라고.
농사를 짓고 자연과 벗하며 새로운 터전에 뿌리를 내리겠다는 목표로 활활 불타는 사람들과 무리 지어 고흥을 찾았다면 분명 희망이 실망보다 컸을 것이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만으로 그곳의 모습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내가 나고 자라온 서울도 때로는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지 않던가.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이미 생각이 바뀌었다.
당신의 귀촌 희망 지역 1순위는 여전히 고흥이 맞냐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나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도대체 자연인들은 그 막막한 적요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귀촌에 대한 생각 자체가 바뀌었다.
귀촌이 그렇게도 좋아서 꼭 내려가야만 하는가?
아니다.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이다.
*
내가 만난 고흥이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혜의 경관 속에 한센병 환자들의 아픈 과거와 현재를 품고 있는 소록도에는 꾸준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이다.
우주선이 하늘로 쏘아지는 날에는 우주선 발사 전망대에 사람들이 몰려와 환호할 것이다.
어떤 날은 다도해의 장관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이 팔영산의 정상에 오르고 바다 곳곳을 찾을 것이다.
고흥의 산과 바다와 그곳에 이미 정착한 사람들과 그곳을 즐기러 찾아오는 관광객들 틈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시골살이를 하겠다고 내려가서는 군청이나 읍면 소재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거주민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은 올바른 귀촌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아니면 바라던 대로 외딴 마을 끝에서 고독에 몸부림치며 살 것인가?
외딴곳에 살아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틈틈이 러닝을 즐기면 문제가 없다고?
동네책방을 열고 독립출판을 시작하면 고독할 틈도 유유자적할 시간도 없을 거라고?
그렇지. 나는 그런 마음으로 시골을 동경해 왔다.
그러나, 눈으로 보는 적막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벗어나 있었다.
아, 도대체 나는 무엇을 바랐던 걸까?
*
나는 중년 이후의 삶이 고독의 벽에 갇혀 살고 싶지 않아 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
적당히 적요하고 적당히 번화함을 누리는 삶을 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귀촌을 해야 하는 걸까?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 도시에서는 불가능한 것인가?
나는 귀촌을 꿈꾸기 전에 5도 2촌을 생각했다.
주간의 5일은 일하며 지내고 주말에는 시골에 농막 따위의 적당한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하여 시골살이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라 여겼다.
완전한 시골살이만이 내게 자유를 안겨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지금 내게 시간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가 주어져 있는가?
결론은 아직 완전한 시골살이를 누릴 조건이 충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주저하는 내게는 떠날 용기가 없는 것이다.
짧은 여행으로 깨달았다.
귀촌과 귀농은 용기 있는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멋진 신세계라는 것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