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The 3rd Life(11):탐욕의 역사, 탐식

한물가고 있는 중입니다만

by 판도


중년에 접어들며 몇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그중의 하나가 식탐이다.

사람이 나이가 많아지면 머릿속에 혹은 뱃속에 감추어둔 욕심 주머니가 슬금슬금 커지면서 욕심 덩어리도 덩달아 커지고 없던 욕심마저 하나둘 늘어나게 마련이다(나만 그런가?)


그 달갑지 않은 불청객을 노욕老慾이라 하는데 마치 신의 지위라도 누릴 것처럼 재물을 탐하고 명예욕과 지배욕이 눈덩이처럼 커지기도 한다.


과도한 건강 염려증이나 잦은 성형, 외모에 대한 과한 치장도 노욕의 한 모습이고 인정에 대한 집착과 타인에 대한 간섭도 심해지기 마련이다.


그 노욕에 들어가는 또 한 가지가 바로 식탐이다.


즉, 노욕은 식탐의 형태로도 찾아오는 것이다.


아는 것이 많으니(세상의 이런저런 미식에 대한 정보를 보고 듣고 또 직접 먹기도 하니) 먹고 싶은 것이 많아지기 마련이리라.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지만 인간이 하루 삼시 세끼를 먹는 것은 무슨 법칙인 듯한 규칙이 된 지 오래다.


하루 삼시 세끼를 먹는 것에는 당연히 죄가 없다.


탐식 또한 죄라 할 수 없다.


그러나 탐식이 불편한 행위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젊었을 적 나는 비만인을 무시했다.


자기 관리를 못하는 사람이라 규정하고 비웃었다.


그러나 나 또한 비만인이 되었다.


나이가 들며 살이 쪄가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진대사가 왕성한) 젊음이 주는 한때의 선물을 살이 찌지 않는 타고난 체질로 착각했던 것이다.


더불어 자기 관리를 잘하지 못했던 거다.


아무튼 나는 반성하고 있고 부끄러워하고 있다.


*


사실 나는 살기 위해 먹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언제나 밥맛이 없었다.


끼니때가 찾아오는 것이 곤혹스러웠다.


먹고 싶지 않음에도 먹어야 한다는 강요가 싫었다.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도 먹어야 한다니.


다행히도 나는 반항적인 아이가 아니었기에 성장이 멈추지는 않았다.


정말 다행이다.


양철북이 떠오른다.


살다 보면 싫어도 따라야 할 일들이 있다.


그러나 유치한 시절의 내게 있어서 사람들의 다그침은 관심과 사랑이 아니었다.


그저 무례함으로만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주변에서 말려도 나는 삼시 대여섯 끼는 거뜬히 먹는다.


배가 부른데도 먹고 마신다.


미친 거다.


노욕 덩어리가 인간을 지배하는 거다.


어느 날 갑자기 다이어트란 반갑지 않은 낱말이 내 인생에 등장했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


얼마 전 어느 여배우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멋진 몸매를 유지하는 그녀는 라면이라는 음식은 일 년에 딱 한 번 먹는다고 했다.


게다가 국물은 절대 먹지 않는다고도 했다.


대단한 의지요 엄청난 자기 관리다.


그러나 부럽지는 않았다.


도리어 조금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라면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은 아니지만 일 년에 한 번은 너무했다.


라면이 괴식도 아니고 과식을 할 것도 아닌데 라면을 먹는 기쁨을 멍청하게 날려 버린다고?


건강을 위해서라면 경계해야 할 음식이 너무도 많지 않은가.


그 사람이 술과 담배도 멀리하고 인스턴트 음식도 먹지 않고 올바른(?) 음식만을 섭취하는지 궁금하다.


자기만족이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행위이건 과도한 음식 제한 또한 일종의 노욕이지 않을까?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는데 오늘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탐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고,


나란 사람이야말로 가급적 올바른 식생활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음식에 욕심을 부리는 자가 되면 모름지기 몸이 망가지고 마음마저 황폐한 인간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욕심을 부리는 인간치고 아름답게 사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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