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가고 있는 중입니다만
이번 주에는 월요일과 목요일에 각각 5킬로를, 토요일인 어제는 7킬로를 달렸다.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한강을 곁에 두고 서울과 구리 시계를 넘나들며 달렸고, 어제는 하남의 둘레길을 역시 한강을 끼고 달렸다.
드디어 봄이 왔다.
날씨가 좋으니 산책하는 사람도 달리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기온이 오르고 화창하여 3일 모두 러닝 하기에는 최고의 날이었다.
사람이 머무는 곳의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더불어 나의 일터와 내 집을 둘러싼 자연환경의 더할 나위 없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의 귀한 선물을 모르고 먼 곳만 동경하며 사는 멍청이가 바로 나다.
지금 심정으로는 귀촌보다는 현재의 주거 환경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느냐가, 또 그것을 얼마나 만끽하느냐가 관건이지 싶다.
결국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달렸다.
또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사는 곳의 만족도는 높다.
3일 모두 반바지와 반팔 셔츠를 입고 달렸는데, 땀을 흠뻑 흘린 것은 좋았지만 내리쬐는 태양에 얼굴이 따가운 것은 옥에 티였다.
기온이 더 오르면 한낮 러닝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월요일의 일이다.
점심 영업을 마치고 러닝 채비를 했다.
기가 막히도록 좋은 날씨다.
기온이 영상 20도에 육박하여 바람막이 점퍼를 벗어던지고 반팔티에 반바지를 입고 가게를 나섰다.
몸을 간단히 풀고 달리기를 시작하는데 하늘로 붕 떠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맑은 하늘과 싱그러운 바람과 쾌적한 기온이 내 기분을 지배했다.
나뭇잎은 물이 올라 초록초록해지고 나무들 저마다의 가지에 달려 있는 꽃망울은 제 빛깔로 짙어지고 있었다.
참 좋은 시절이다.
오늘은 가볍게 5킬로만 달리기로 했다.
한참을 달려 반환점을 바로 눈앞에 두었을 때다.
둘레길 러닝에서 가끔 마주치던 노파가 앞서 달리고 있었다.
그는 적어도 70의 나이는 넘었으리라.
왜소한 체격에 (굽은 등을 더욱 말아 웅크린) 기괴한 폼으로 달리는 그는 천천히 달렸지만 슬로 러닝의 대표 주자인 나보다는 속도가 빨랐다.
달리는 자세만큼이나 복장도 이상했다.
올 블랙이다.
검정 운동화에 검정 바지, 또 검정 바람막이까지.
날씨는 따뜻하건만 왜 바람막이에 달린 후드는 뒤집어썼을까?
저승사자를 떠올리는 복장에 신경이 쓰였다.
(사실 달리다 보면 이런 사람들 꽤 많다.)
나는 속도를 높여 그를 앞질렀고 곧 반환점에 다다라 몸을 틀어 되돌아섰다.
뒤따르던 노파와 바로 마주쳐 흠칫 놀랐지만, 그는 땅만 보고 제 갈 길을 달렸다.
노인네가 생각보다 빠르다고 생각하며 달리는데 어느 틈에 되돌아왔는지 검정 노파가 내 곁에 붙었다.
아니, 붙는가 싶더니 곧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것이었다.
뭐지? 나와 레이스라도 벌여 보자는 심산인가?
나도 모르게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나보다 빨랐지만 내가 속도를 내면 따라잡을 수는 있는 속도였다.
다시 내가 그를 앞섰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은 우쭐함에 더욱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젠장.
그가 어느 틈에 달려와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 아닌가.
진짜 해보자는 거구나.
우리는 한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했다.
기록은 빨라졌지만 죽을 것만 같았다.
(고등학교 때 이렇게 달리다 피를 토한 적이 있었는데...)
멀쩡하던 허벅지 뒤쪽의 햄스트링에 갑자기 쥐가 난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잠시 긴장하며 속도를 늦추자 기다렸다는 듯 검정 노파가 앞서 달려 나갔다.
이건 아니다.
기분이 상했다.
나는 이 레이스에서 질 생각이 없었다.
허벅지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이를 악물고 달려 다시 그를 따라잡았다.
핸드폰 속의 러닝 어플이 3킬로를 지나고 있음을 달렸다.
이제 남은 2킬로만 그를 앞서서 달리면 된다.
오늘의 러닝 목표인 5킬로를 달성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그가 이봉주처럼 내 곁을 지나 달려도 상관없었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고 달렸다.
뒤를 돌아보고 싶지만 자존심에 목이 움직이지 않았다.
3킬로를 평균 9분대로 달리던 나는 4킬로 구간을 8분에 주파하고 5킬로 구간을 7분대에 달리며 오늘의 레이스를 마쳤다.
터질 듯한 심장과 아프다고 악을 쓰는 대퇴부를 부여잡는 순간, 검정 노파는 기다렸다는 듯, 바람처럼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여전히 앞만 보고 달렸지만, 모자 뒤에 달린 두 눈으로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조금은 씁쓸해도 페이스 메이커 덕분에 오랜만에 제대로 된 러닝을 체감했다.
슬로 조깅을 하다 피를 토하며 죽을 수도 있으니 다음부터는 쓸데없는 레이스는 경계할 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