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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Mar 31. 2024

식당의 탄생

28. 코로나 블루 - 2020년의 상흔


 저희 마스터낙지는 2019년 2월 8일 개업하였습니다.

만약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1년만 빨리 도래하였다면 마스터낙지는 개업과 동시에 폐업한 식당으로 남았을 겁니다. 참 운이 좋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인간이 이룩해 낸 눈부신 과학의 발전이 해괴한 질병을 만들어내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 상황."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은 코로나의 도래에는 쓸 말이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천벌'이나 '인과응보'가 어울리는 말이 아닐는지. 아무튼 살기 좋아진다는 말의 이면에는 무언가를 자꾸 훼손하고 나쁜 걸 만들어내는 인간의 탐욕이 도사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실질적인 코로나 원년은 2020년으로 보는 것이 맞을 거예요. 그런데 일기를 들추어 보니 그 해의 기록은 먹고사는 이야기뿐입니다. 아마도 너무 힘들어 일부러 코로나를 외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니면 코로나와 투를 벌이느라.   


       



          

 2020년 1월 8일, 국내에서 '중국에서 기인한 원인 불명의 폐렴' 환자가 처음으로 발생하였습니다. 확진자란 이상한 신조어가 탄생했고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되었습니다. 마스크가 최고의 예방책이라는 아이러니. 그러든 말든 지역 감염이 확산하고 아픈 사람은 늘어만 갔습니다.      


 식당에 손님의 발길이 끊겼습니다. 요식업뿐만이 아닙니다. 여행업계, 유통업계, 스포츠, 극장과 공연업계, 학원가를 포함한 교육업계 등 사회 전방위적 위기 상황이 도래하자,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었습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이 정언 명령처럼 내려지다니(지금 생각해도 이 말 이상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재난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가격리가 시행되었습니다.        






 2020년 11월 10일.      

 봄과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깊어지던 2020년 11월 어느 날. 원하지 않은 불청객이 기어코 마스터낙지까지 찾아왔습니다.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확진자가 우리 가게에 다녀갔으니, CCTV를 확인하러 오겠다고. 다행히도 손님이 끊긴 오후 3시경에 가게를 찾은 그들은 먼저 방문대장을 확인하더니 CCTV를 보며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사람이 없는지를 살폈으며, 확진자의 결제 시간을 체크했다. 현장 확인은 불행 중 다행으로 특별한 문제없이 끝났고 5시경에 방역을 하러 사람들이 온다는 것이었다. 젠장. 오후 영업이 시작되는 시각에 방역이라니…… 확진자는 지난주 토요일에 다녀갔다는데 사흘이 지나서야 방역을 한다는 건 또 뭔가? 너무 보여주기식 아닌가? 어제와 그제 다녀간 손님들은 유령들이란 말인가? 이 어려운 시대에 죽기 살기로 버티며 가게 문을 여는데 영업시간에 방역을 하고 소독을 위해 문을 닫아야 한다니…… 정말 힘이 빠지고 화가 난다. 영업이 끝나는 시간에 와서 방역을 하면 밤새 소독이 되어 이튿날 평소처럼 손님을 맞을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 좋다. 받아들이고 오후 영업 기꺼이 접어주마. 세상 참 뜻대로 되는 일 하나도 없다. 이게 인생이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12월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상황은 언제 끝날까? 끝나기는 할까? 독감 백신처럼 효능 있는 백신이 개발되어 코로나 백신만 접종하면 마스크를 벗고 이전처럼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술집과 식당에서 서로 어깨를 부딪쳐 가며 즐겁게 식사하고 술을 마실 수 있을까?                



12월 9일.      

 거리두기 2.5단계가 시작되고 가게를 찾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어쩔 수 없이 점심을 외부에서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식당을 찾는 손님이 없다. 얼마 전 확진자가 600명대에 이르기 전만 해도 코로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코로나 시대를 잊은 사람들처럼 식당이 활기를 띈 적도 있지만 2.5단계 시행 이후에는 하루 매상이 현저히 떨어지고 말았다. 많은 회사들이 가능한 한 재택근무를 실시하였으며, 회사에 나와도 도시락을 싸 오거나 배달을 시켜 먹는 직장인들이 태반이다.      

 정부가 연말연시 모임을 자제하고 온택트 모임을 장려하는 상황에서 팔자 좋게 모임을 가지고 송년회며 신년회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은 없을 터. 나라도 식당은 꺼려지는 판이다. 누가 이 위험한 시대에 일부러 호랑이굴을 찾아가겠는가 말이다.  

    

 저녁 손님은 엄청나게 줄었다. 술손님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저녁에 손님이 와도 한두 팀인 세상. 2.5단계는 연말까지 이어진다고 하는데…… 자영업자는 계속 쓰러져 나갈 것이고 나 또한 그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12월 10일.      

 어디가 끝일지 두렵기만 하다.     

 코로나의 끝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끝없이 번지는 전염병이 두렵다. 연일 확진자의 수가 늘어만 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중에 들리는 반가운 소식 하나. 내년 상반기에는 코로나 백신의 접종이 시작된다는 것. 그러나 그때까지 우리 버틸 수 있을까? 그때까지 우리 자영업자들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공무원이나 직장인이 코로나에 걸리면 며칠 자가격리로 끝이다. 그러나 소상공인은 확진이 되면 바로 가게의 영업이 중지된다. 생계가 막막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 관료들은 국민이 낸 혈세로 생색을 내며 제대로 불을 끄지 못한다. 더욱 답답한 노릇은 그들의 헛발질도 무조건 참아내야 하는 것이 바로 국민들이라는 것이다.              

 


12월 15일.      

 전염병 시대의 풍경 하나   

  

 이제는 코로나가 코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여기저기를 유령처럼 떠돌던 코로나가 바로 우리 앞에 멈추어 서서 오늘은 어느 놈을 잡아먹을까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원치 않는 3차 대유행이 번지고 있다. 사회 각처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3단계로 격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    

 

 그러나 이 혼돈 속에서도 태연한 사람들이 있다. 이분들은 다른 세계에 머물듯 강인한 정신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 불가결한 의식주 중의 하나인 식생활을 보면 답답한 풍경이 하나둘이 아니다.     

 이분들은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먹기 위해 사는 분들이다. 식사를 마치고도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카페에 갈 수 없는 스트레스를 식당에서 푼다. 자판기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수다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당연히 마스크는 엉덩이 옆에 놓여 있다. 더한 부류도 있다. 직장인들로 붐비는 점심시간에 태연히 낮술을 마시는 사람들. 마치 투명 박스 속에 자리를 잡은 듯이 생명을 맡기고 자신의 운을 시험한다.          


        

12월 21일.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1,000명을 넘어서더니 서울 이곳은 23일부터 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2020년은 악몽 그 자체이고 순삭하고만 싶은 한 해이다. 코로나로 시작하여 코로나로 끝이 나고 말았다. 모임의 금지는 영업의 종말을 의미한다.      

 우리처럼 작은 식당은 애초에 송년회 모임 등의 단체 행사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지만 주변의 규모가 큰 식당들은 연말 대목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 처지에 놓였다. 전염병이 무섭다. 정말 끝이 없다. 모든 걸 앗아 간다. 2021년은 제발 아시타비의 이기적인 마음을 거두고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한 해가 되기만을 바란다.       


        

12월 29일.     

코로나 시대의 역설      

오늘 점심 매출 신기록을 세웠다. 이런 혼란스러운 코로나 전염병 시기에 매출 신기록이라니……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확진자가 1천 명을 넘나들며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상황에서 식당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거꾸로 포장과 배달 손님이 급증하고 있다. 오늘 매출의 일등 공신 또한 배민과 단체 주문 손님이었다. 다행히도 홀 손님도 적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가 미리 배달 서비스를 도입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물론 배달비 등으로 객단가는 떨어지고 수익률도 낮아졌지만.     




     


 12월 마지막 날, 큰딸 지완이가 말했습니다.     


2020년에 우리가 제일 잘한 일은 건강하게 한 해를 보낸 거예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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