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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Apr 28. 2024

식당의 탄생

32. 성스러운 예비 목회자들


  어디건 사람 사는 세상이란 함께 하는 이들이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이 맞을까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관상을 봅니다. 그렇다고 관상학 같은 거 공부한 적이 없기에 그의 운명이나 수명 따위는 절대 모릅니다. 단지 상대의 눈에 제 눈이 가닿은 찰나의 느낌만으로 그의 모든 것을 파악하여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겠구나를 함부로 멋대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주 위험한 짓거리, 맞습니다. 그에게도 저에게도.



  한 번은 유통업계에서 일하는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손에 물 묻히기는 싫어하고 눈에 보이는 화려함만을 좇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사실 빛 좋은 개살구인데 말이지."


  저는 그분의 말을 듣고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두 손의 물기가 마를 새 없이 우리네 인간이 먹을 음식을 정성껏 만드는 분들이기에 말이죠. 그분들은 한 식당의 주방 찬모이기 이전에 세상 모든 이의 어머니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들이 지어주는 밥을 먹고 자라났습니다. 비록 인기 있는 먹방 프로의 찬란한 스포트라이트는 멋진 셰프만을 비추는 시대이지만, 우리가 찾는 소박한 식당은 반드시 그들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하루의 고단함을 등에 지고 일터를 벗어나도 기꺼이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들이 있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2019년 10월 5일의 일기입니다.


  브레이크 타임에 잠시 짬을 내어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갔는데 강바람이 너무 거세고 차갑네요. 울 ***낙지의 알바생들 중에는 신학대 학생들이 몇 있습니다. 노래를 너무나 잘 불러 SNS에서도 제법 유명한 한 친구는 공군 장교로 여름에 입대를 했고 다른 두 명의 학생들 또한 신앙심이 깊어 제가 많이 배우는 스승과 같은 녀석들입니다. 사실 녀석들이라 말하면 안 되는 것이 이 학생들은 장래 목회자 활동을 할 사람들로 남다른 길을 가는 청년들입니다. 저 같으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위험한 나라에, 그것도 자비로 봉사 활동을 다녀오는 등 어른들이 부끄러울 만큼 순수한 종교 및 봉사 활동으로 타의 모범이 되어 줄 뿐만 아니라 가게에서의 알바 또한 손님들이 너도 나도 칭찬을 할 정도로 모범적인 생활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일하는 와중에 이 친구들이 눈에 들어와 급히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마스터낙지는 작은 식당이기에 직원이 많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주방에 찬모님이 있었지만 열악한 환경 때문에 금세 그만두시고 또 자주 바뀌었습니다. 결국 언제부턴가 아내가 주방으로 들어와 부부가 주방을 책임지고 홀에는 아르바이트 직원을 쓰는 시스템으로 바뀌었습니다. 한 번은 큰맘 먹고 젊고 경력도 있는 청년을 정직원으로 채용했는데 평생 함께 일할 것처럼 큰 소리를 치더니 일주일 만에 그만둬 버리더군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더 할 말도 없네요.


  지금은 파트타임 알바생들이 가게의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모두 신학대생입니다^^). 식사 시간의 피크 타임에만 한두 시간씩 짧게 일을 하지만 그들이 가게에서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대단합니다. 활기차고 건강한 식사 시간의 분위기는 거의 그들이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알바생들의 역할은 작지 않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배들은 조언합니다.


  “정을 주지 마라, 기대를 하지 마라, 직원 관리 매뉴얼부터 만들어라..”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누구의 말이 맞고 누구의 생각이 틀리다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서로가 행복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한 배를 타고 가는 동안은 즐겁게 지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상호 평등한 존재라는 규범적인 가치를 떠나 인생의 선배인 제가, 고용인인 제가 좀 더 배려하고 아끼고 사랑하길 원할 뿐입니다. 짧은 인생 뭐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학생들과 함께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개업 당시에는 인근에 있는 신학대생들과 일면식도 없었지요. 당연히 오픈일부터 그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식당을 시작할 때에는 홀 알바 일은 인력 파견 회사에 요청하여 홀 서빙 경력이 있는 단기 알바 직원을 채용하여 식당을 꾸려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일손이 더 필요하여 알음알음으로 초능력자 지인의 소개로 첫 멤버인 신학대생 강현이가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참 많은 학생들이 저희 부부와 인연을 맺고 저희를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노래(성가)를 잘 부르는 강현이, 마스터낙지가 맺어준(?) 커플 동국이와 보라...


  그 이후의 친구들의 이름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 보겠습니다. 양소망, 인구, 수인, 재현, 나단, 하모, 다혜, 아론, 화평, 수현, 상화, 평강, 정소망, 현성, 운도, 준성, 하람(두 명), 가영... 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을 위해 보충하는 걸로.


  신학대생 아니면 신학대학원생인 그들은 목회자가 될 분들이지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줄 분들이지요. 그들은 누구처럼 힘이 세지 않습니다. 권력은 당연히 없습니다. 쓴 만큼 거두려는 탐욕도 없습니다. 국민을 볼모로 삼지도 않습니다. 오직 신과 함께 하는 그들에게 영광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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