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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Sep 15. 2024

식당의 탄생

50. 간을 보다

  

  어린 시절, 큰 댁 음식을 맛보기 전까지 세상 최고로 맛있는 인생 요리는 당연히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이었습니다. 큰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요리 신세계에 퐁당 빠질 때까지 트루먼 쇼의 짐 캐리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죠(어머니 죄송해요). 



  꼬맹이의 어느 설날 아침, 큰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모두가 아침 상 앞에 모여 앉았습니다. 큼직한 상 가득히 차려진 맛난 음식에 침만 꼴깍이며 어른들 눈치만 봅니다. 겉으로는 예의 바른 아이로 의젓하게 앉아 있었지만 맘 속으로는 “어서 드세요. 제발요.” 하며 어른들의 젓가락질을 재촉하였습니다.

 

  음식의 맛과 풍성함으로만 따지자면 생일잔치상의 음식도 설날과 추석의 제사 음식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달콤한 케이크도 명절 음식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큰 어머니가 만드신 음식은 지상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토란국에 소고기 산적, 동그랑땡, 녹두빈대떡만으로 그저 행복했으니까요. 


  생각해 보니 제가 다른 가족들 모두 좋아라 하지 않았던 토란국을 좋아했던 것은 오직 큰어머니의 음식 솜씨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평소 음식을 가려 먹어 식사 시간이 가장 곤혹스러웠던 제가 명절만 되면 밥을 두 세 공기씩 먹은 것은 전부 큰 어머니 덕분이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제가 명절만 지나면 어머니께 음식 투정을 했었거든요. 끼니때마다 큰 집 음식처럼 해달라고 수없이 어머닐 귀찮게 했었거든요.

  그러면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엄만 손이 커서 그런 거야. 엄마도 재료 아끼지 않고 듬뿍듬뿍 넣으면 큰 엄마 음식처럼 맛있게 해 줄 수 있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게 만든 어머니의 토란국은 고기만 잔뜩 들어갔을 뿐 큰 어머니의 맛을 절대 따라갈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밥상을 차리며 종종 물어보셨습니다. 


싱겁지 않니? 여기 소금. 간은 네가 맞춰.

  지금 갑자기 제가 어머니의 뒷담화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누워서 침 뱉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식당을 하면서 음식에 대해 제가 가장 크게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음식은 간이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간'이란 '음식물의 짠 정도'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간을 본다는 것은 음식의 짠 정도를 맞추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하신 말씀은 싱거우면 소금으로 짠맛을 더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요리 솜씨를 물려받았는지 아니면 간을 잘 못 맞추는 어머니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는지 음식의 간을 맞추는 데는 젬병입니다. 어느 날 알바생들의 점심 식사로 제가 떡국을 끓였는데 아이들을 먼저 먹이고 나중에 먹어보니 너무나 싱거웠습니다. 맛있다며 먹어 준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던 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야 음식을 싱겁게 먹기 때문에 괜찮지만 가게의 손님이나 다른 사람들을 대접할 때에는 좀 더 신경을 쓰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식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이지만, 정성만으로 세상의 요리가 맛있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간을 잘 맞추는 남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물론 마스터낙지는 초능력자 덕분에 간이 맞는 음식을 손님상에 올리고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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