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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탄생

66. 성공하지 못한 식당에는 없는 단 한 가지

by 판도


인심도 행운도 간절함을 이길 수 없다.



몇 주 전 초능력자와 하얼빈이라는 영화를 보았지요. 리뷰를 쓴 기자의 평가는 인색하였지만(그의 수준이 의심스러울 뿐), 제가 보기에는 꽤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특히, 몇몇 대목에서는 지금의 우울한 현실과 겹쳐지며 공감을 이끌어내더라고요.



이토 히로부미가 말합니다.



조선의 합병에 내가 머뭇거린 까닭은 바로 조선의 백성들 때문이다. 어리석은 왕,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 온 나라지만,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야.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



조선 백성들의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합병이 쉽지 않다는, 즉,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는 조선 민중의 힘이 무섭다는 뜻인 게지요.


이토 히로부미가 두려움에 치를 떨던 안중근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은 한결같이 조국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것이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그들의 간절함이 없었다면 이 땅의 독립은 요원했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 탓에 조국을 빼앗길 뻔했지만, 백성들의 간절함 덕분에 조국을 지킨 것입니다.






이제 다시 식당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함에 있어서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어 왔습니다(업력이 쌓여 갈수록 핵심 가치에 가까워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1. 식당 일에 전혀 관심이 없던(그저 손님이었던) 시절에는,


'식당, 그까이 꺼 열심히만 하면 되는 거 아냐?'


하며 만만하게 여겼던 것이 사실입니다. 더구나 쉬는 날도 없이 365일 영업을 하는 가게들을 보면 측은한 마음마저 생기면서,


'나는 저런 거 절대 못 해'


하는 시건방진 마음이 도사리고 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2. 그 후 어쩌다 식당 사장이 된 후,


고민이 많았습니다. 야심은 없었지만 이왕 시작한 일, 당연히 잘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러나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뿐입니다. 식당 문외한의 시절과 달라진 게 없었던 것이지요.


3.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성공에 대한 제 생각도 바뀌었지요.

식당 사장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인심'이라는 생각에 이른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고객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고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하며, 결국은 고객에 대한 최선의 마음 씀씀이 - 바로 인심만이 식당을 성공으로 이끄는 최고의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더하여 운도 필요하고...


4. 시간이 더 지나 개업 7년 차가 된 지금,


다시 생각이 변했습니다. 아니 깨달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성공하지 못한 식당에는 간절함이 없습니다.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쓰러지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어떻게든 가게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필사적인 마음 - 절박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탐욕, 거만한 마음, 게으름, 불성실함, 부족한 서비스 마인드, 남 탓만 하는 마음, 근시안적인 사업관, 무절제함 따위의 식당을 망하게 하는 만 가지의 이유...


탐욕스러운 사장은 손님 상에 올리지 말아야 할 거친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음식의 양을 줄이며 마땅히 버려야 할 남은 음식을 다시 사용하려 합니다.


시건방진 사장은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저만 잘났다고 으스대며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 뒤처지게 마련입니다.


게으른 사장은 냉장고의 식재료를 썩어 문드러지게 만듭니다. 신선한 재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버려야 마땅할 재료로 음식을 만듭니다.


성실하지 못한 사장은 최악입니다. 망하려고 작정하고 사업을 시작한 겁니다. 혼자만 망하면 그나마 낫건만 가족들에게 피해가 갑니다. 사실 불성실하면 무얼 해도 안 되기 마련입니다.


서비스 마인드가 부족한 사장은 사나운 개가 되어, 단골이 되어 마땅한 손님들을 내쫓습니다. 들어온 복을 발로 내차는 형국입니다. 반성합니다.


밥 먹듯이 남의 탓만 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잘못은 없습니다. 경기가 안 좋은 탓이고, 내 가게의 상권과 입지가 나쁜 탓이고, 일 못하는 종업원 탓입니다.


사업 능력이 없으면 근사한 인테리어로 새로 오픈한 식당마저 엉망진창으로 만듭니다.

고객과의 약속은 물론 스스로와의 약속도 지키지 않습니다. 제 때 문을 열지 않고 서둘러 도망치듯 문을 닫습니다.


이렇듯 내 가게를 망치는 이유는 차고 넘치기 마련입니다.






이 모든 결함을 사라지게 만드는 성공의 묘약은 상술이 아닙니다.

사장의 절박한 마음만이 가게의 부족함을 메워줍니다. 핑계를 대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드디어 깨달았습니다. 가게를 살리는 최상위 가치는 인심도 운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간절한 사장의 마음만이 가게를 살리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그래 이 사람아. 이제라도 깨달았다니 다행이네. 그럼 자네는 간절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가?'



하얼빈의 엔딩 장면에 결의에 찬 안중근의 독백이 흐릅니다. 조선 민중이 밝힌 그 불이 곧 간절함이 아닐까요?


어둠은 짙어 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을 모아야 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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