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식당 하는 마음
요 며칠 참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점방 앞의 골목에 눈이 쌓이면 마음이 바빠집니다. 오늘도낙지가 있는 건물에는 1층 큰길 쪽으로 식당이 하나 있고 골목 안에 저희 가게가 있습니다. 건물의 2, 3, 4층에는 일반 살림집뿐인데 골목을 함께 사용하면서도 어느 누구도 눈을 쓸지 않습니다. 쓸기는커녕 마구 밟고 지나가 눈을 쓸기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일곱 번의 겨울 동안 변함이 없습니다. 뭐 아쉬운 사람이 빗자루를 들 수밖에요.
지난 목요일에는 새벽부터 눈이 내려 점방이 오픈하는 11시까지 영업 준비를 하는 사이사이 다섯 번이나 눈을 쓸었지요. 영하 7도의 날씨에 롱패딩을 입고 빗질을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이 후끈거리고 김이 피어오릅니다. 염화칼슘도 소용이 없습니다. 얼어버리기 전에 빨리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가게에 오시는 손님이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책임 여부를 떠나 얼마나 미안한 마음이 클는지 잘 알고 있기에 말이죠. 식당 하는 마음이 이런 거겠죠.
식당 하는 마음의 최상의 가치는 바로 간절함이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물론 정답은 아닙니다. 아직 부족한 7년 차 식당 주인의 개인적 신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와 지금의 제가 다르듯이 시간이 흘러 좀 더 세상 이치를 깨달으면 지금의 제가 감히 생각해내지 못한 다른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식당도 하나의 사업일 뿐입니다. 당연히 자선 활동도 봉사 행위도 아니고요. 돈을 벌겠다고 시간과 노력과 유무형의 자산을 투자하는 영리 활동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식당 하는 마음은 자명해집니다. 어느 하나의 가치에 매몰되지 말고 어떻게든 합법적인 방법을 총동원해 돈만 벌면 됩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면 식당 하는 마음은 고도의 영업 활동일 뿐입니다. 인심이니 간절함이니 하는 뭔가 있어 보이는 고상한 가치를 벗어나 버립니다. 뛰어난 상술이 필요하고 시류에 영합한 마케팅 따위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참 이런 거 저란 사람에게는 잘 맞지 않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장사를 못하나 봅니다).
더구나 요즘 같은 불경기에 먹고살기 위해서는 고상한 취미처럼 카페나 식당을 경영하면 호구되기 십상입니다. 인스타건 블로그건 숏폼이건 무엇이건 간에 상술을 발휘해야 합니다.
집으로 가는 만원 전철에서 내 앞에 자리가 나더라도 말이지요. 조금만 머뭇거리면 어디선가 누군가 번개처럼 나타나 자리를 차지해 버립니다. 서서 가는 게 마음 편하다고요? 그것도 하루이틀이고 십분 이십분입니다. 그건 젠틀한 것도 아니고 미덕도 아닙니다. 그냥 멍청한 겁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결국 저란 인간에게 있어서의 식당 하는 마음은 다시 간절함으로 돌아가고 마네요. 사실 간절함에는 폼 잡고 우아함을 부리고 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런 건 개가 줘버려야 합니다.
오낙 최장기 알바생 조나단 군이 드디어 교회 사역에 임하면서 아쉽게도 오늘도낙지를 떠나게 되었지요. 군 전역을 하고 첫 알바를 오늘도낙지에서 시작하여 7년 차 식당에서 6년을 일했으니 정말 대단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엊그제 나단 군이 출근길에 점심을 먹으러 오낙에 왔습니다. 양복에 넥타이를 갖춰 입고 코트까지 입은 단정한 모습이 너무 멋져 보이더군요.
조나단 군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던 차에 결국 휴학을 한 것입니다. 장래에 대하여 고민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것이었지요. 시간이 흘러 그런 그가 무사히 졸업을 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더니 전도사가 되어 성장을 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덕담을 하였습니다.
"이제 자리를 잡았군. 아주 멋져. 앞으로는 너무 많이 흔들리지 말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
라고 말이죠.
식당 하는 자의 마음은 말이죠.
겸손해야 하고
따뜻해야 하고
총명해야 하고
부지런해야 하고
귀 기울여야 하며
간절해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답니다.
그런데 말이죠.
따지고 보면 말이죠.
식당 하는 마음은 다른 거 없습니다.
그저 돈을 버는 마음일 뿐입니다.
어쩌면 돈을 벌 수 있는 모든 수단과 가치가 필요할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라는 자는 모든 면에서 부족한 자임을 자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젠장.
어제 있었던 힘 빠지는 사건 때문에 이번 글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다시 손가락을 놀립니다.
어젯밤 단체 손님이 있었습니다.
열 명 예약으로 음식을 미리 준비했는데 사전 연락도 없이 여덟 명만 와서 2인분을 버려야 했습니다.
게다가 지인 찬스를 쓴 손님들을 위해 양주 콜키지 서비스를 차지 없이 허락했건만 어디서 하이볼 재료(얼음과 술과 희석할 음료까지)를 가방에 넣고 잔뜩 갖고 와서 그걸 일일이 조제해서 마시더군요. 게다가 오늘도낙지에는 엄연히 하이볼 메뉴가 있는데도 말이죠. 어처구니없는 무개념 손님들의 무례함에 속이 상했습니다.
나중에 만나면 절대로 이 일을 잊지 않고 따끔하게 쏘아붙여 반성하게 해 주리라. 이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지인에게서 톡이 옵니다.
'죄송합니다. 어쩌다 보니 우발적으로 칵테일 마시게 되었는데 이해해 주세요'
라니.
젠장.
우발적이라고?
더는 이대로 넘어갈 수 없기에 한 마디 남겼습니다.
"양아치 짓을 해서 손절하려고 했는데 톡을 보내오는 걸 보면 아주 쓰레기는 아니네. 다시는 어디 가서 그러지 마라. 식당 사장들 맘 아프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