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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탄생

72. 골목식당에서 배우다

by 판도


"전체 자영업 중 폐업 업종 1위, '식당'!"


위의 글은 네이버의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소개하는 첫 문장이랍니다. 우리는 식당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일이 고되고 힘들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요즘은 연일 보도되는 '나가떨어지는(폐업이나 빚더미에 올라앉는) 자영업자' 관련 뉴스를 통해 이 시대에 있어서 '식당'이란 것이 도저히 매력적인 사업일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식당 일 말이죠, 직접 해보니 정말 어렵더군요.

요리도 힘들고, 재료 준비도 힘들고, 설거지도 힘들고, 청결 유지도 힘들고, 마케팅도 힘들고, 평판 유지도 힘들고, 직원 관리도 힘들고, 사장 본인의 건강과 멘털 관리도 힘들고, 손님 응대도 힘이 듭니다(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있겠습니까만). 가장 큰 문제는 해가 지나 업력이 쌓여도 이 어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특별히 많이 부족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종영된 '골목식당'은 예능 프로입니다.


요식업 전문가가 각 식당의 문제점을 찾아내어 해결 방안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능 프로는 쇼입니다. 쇼를 통해 돈을 버는 메커니즘이죠. 당연히 최고의 수혜자는 방송국이고 전문가는 찬란하게 빛납니다(떨어지는 주가를 생각하면 그의 회사를 치유할 또 다른 전문가가 필요하게 되었지만). 기승전결의 잘 짜인 각본 속에서 식당 사장은 때론 터무니없는 뻘짓을 하고, 때론 저항도 하고, 때론 울며 후회도 하며 방황을 거듭하다가 결국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잘못과 실패를 딛고 일어나 대박식당으로 거듭나는 것이죠. 인간극장처럼 잘 포장된 아름다운 프로입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예능적 요소만을 생각하고 그저 재미로 보는 프로라고 무시하면 배울 것이 없겠죠. 예능 프로라고 그냥 웃어 넘기기에는 묵직한 한 방도 있고, 뼈와 살이 되는 교훈도 있고, 평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일들이 식당을 흥하게도 망하게도 하는 작은 균열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니까요. 식당을 하는 자라면, 더구나 초보 사장이라면 이 프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정신 차리고 보고 배워 이 오락 프로의 최대 수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쁜 점은 지양하고 모범적인 부분은 그대로 따라 하면 되니 좋은 식당의 주인 되기, 참 쉽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저 또한 초보 업주 시절에 이 프로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골목식당 사장을 향한 전문가의 지적질이 마치 저를 향한 독설인양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상인의 의식, 상도의, 고객에 대한 예우, 음식에 대한 철학, 식당의 청결 등등 식당의 모든 것이 담긴 프로였으니까요.


특히 이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천천히 정주행을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뇌리에 새겨질 때까지 두 번 세 번 보면 좋겠죠. 고치고 배워야 할 부분이 나오면 열 번이라도 되풀이해서 보는 정성을 들이는 겁니다.






골목식당에는 매회 새로운 가르침이 있었는데 하나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조리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메뉴는 피하여야 한다."


점심시간에 식당을 찾은 직장인이라면 단 10분이라도 아주 길고 귀한 시간입니다. 점심에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도 봐야 하고 커피도 마셔야 하고 낮잠도 자며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소중한 시간이기에 오늘은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며 마지못해 기다리겠지만, 문을 나서면 다시는 그 식당을 찾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직장생활을 할 때 생선구이집은 가급적 피했습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생선을 굽는 시스템이라 귀한 점심시간 1시간을 온전히 식당에 바쳐야 했으니까요. 시간은 금입니다(요즘 금값 아시죠). 그들의 귀중한 점심시간을 빼앗는 식당은 시간 도둑입니다. 그들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맛집은 먼 곳으로부터 벼르고 찾아온 사람들만이 기다려 줄 뿐입니다. 시간이 걸리는 메뉴여서 바쁠 때는 안 된다고 하면 손님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식당 주인이라고 식당을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조리 속도를 높이거나 애초에 메뉴에 넣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당연히 식당을 찾아준 고객을 위한 일이며 결국은 사장과 식당을 위한 일이 될 것입니다.






지인이나 식당에 우호적인 분들로부터 가끔 이런 말씀을 들을 때가 있지요.


"요즘 물가 다 오르는데 이 가격으로 뭐가 남아요? 가격 좀 올려요."


당연히 식당을 위해서 하는 말로 들리지만, 잘 생각해 보면 아주 위험한 말입니다. 정말 뭘 모르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죠.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남의 식당 망하게 하려고 하는 말입니다. '너무 맛있어요' 하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달콤한 인사치레에 홀려 넘어가면 안 됩니다. 그저 덕담으로 치부하면 족합니다. 신의 시험에 취해서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그 이후의 일은 신의 결정에 따라야만 합니다.


돌이켜 보면 개업 후 지금까지 수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습니다.

식당에 호감을 가지고 다시 찾은 손님에게(알게 모르게 또는 본의로, 본의 아니게)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당연히 저라면 그런 식당을 다시 찾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 또한 저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면서 제가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운 좋게도 저는 저의 실수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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