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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탄생

73. 음식의 탄생

by 판도


코로나 팬데믹 시절, 가족과 함께 나들이에 나섰던 어느 일요일 하루를 펼쳐 봅니다. 미완의 숙제와 같은 파스타 이야기를 다시 해보려는 겁니다.



아내와 아이들과 창경궁 나들이를 했다.
답답하고 우울한 코로나 팬데믹의 현실을 벗어나 잠시라도 가족과 함께 고즈넉한 고궁을 거닐고 싶었다. 차가운 공기도 마음껏 들이마시고 싶었다. 산책 후에는 신메뉴 개발을 위한 파스타 맛집도 탐방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고궁 탐방을 통해 詩作을 위한 시상을 떠올려 보겠다는 따로 숨겨 놓은 목적도 있었다.
모처럼의 가족 나들이에 마음이 들떴다.

파스타라는 음식에 꽂혀 있는 요즘이다.
세상의 파스타는 이미 충분히 맛있다. 그저 외국의 면요리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고 싶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스타라는 음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고궁을 나와 드디어 파스타 가게를 찾았다.
당연히 맛은 기본이라고 전제하였을 때 이 집의 맛은 그저 그랬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와 돈을 들인 것으로 보이는 화려한 SNS의 사진을 빼고는 다른 칭찬을 해줄 수 없는 가게였다. 실내는 너무 어두워 청결함의 정도를 확인할 수 없었고 2충으로 올라가는 비좁은 입구 계단에는 이러저러한 가게의 비품들이 통로를 막고 널브러져 있었다.

집에 돌아온 후 아내가 말한다.
이 시대 이 세상 모든 식당에 있어서의 맛과 가격은 그저 식당이 죽어 사라지지 않을 만큼의 하한선에 걸려 있을 뿐이라고. 어려운 말이다. 더 맛있게 만들 수도 있지만, 대중과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논리라고 이해했다. 그녀의 논리가 맞다면 참 아쉬운 이야기다.

아내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첫 번째, 정말 중요한 것은 음식 자체에 대한 감동이라고(집에서는 감히 만들어 먹을 수 없는). 그리고 그 감동은 여러 갈래로 실핏줄처럼 퍼지고 엮이어 고객의 마음을 흔들어야 한다고. 같은 해물 파스타라도 좀 더 푸짐하고 신선한 재료를 써서 고객이 느끼기에, 아, 내가 먹는 음식에 이 집주인은 아낌없이 재료를 쓰고 정성을 다했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 감동은 재료 외에서도 와야 한다고. 다른 가게와는 차원이 다른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고. 차별화가 커질수록 넘사벽의 식당이 되고 넘사벽의 음식이 될 수 있다고. 참 어렵다.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모순되는 가성비.
그리고 세 번째는 가심비다.
어제 골목식당에 나온 황태국수의 5천 원이라는 가격!

'이렇게 해서 뭐가 남아요?'

'많이 팔면 남겠죠, 뭐!!'

그 대목에서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나는 어떠한가?


여기까지가 팬데믹 시절 어느 날의 일이고, 이쯤에서 멋대로 결론을 내려 봅니다.

파스타는 절대 쉬운 음식이 아니라는 것. 아니 세상에 쉬운 음식은 없다는 말이 맞을 거 같네요.

특히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음식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고요.






뒤늦게 흑백요리사를 보았습니다. 정성보다는 기교로 음식을 판단하는 겉멋 든 쇼에 솔직히 저는 빠져들기 어렵더군요(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정성을 들인 음식보다 멋들어진 음식이 대우받는 무대로 보였습니다. 현란한 수사로 가득 찬 미사여구 속에 진미의 요리가 쏟아집니다. 남은 평생, 저 미식을 만들기는 고사하고 먹어볼 기회라도 생길는지요. 물론 그걸 못 먹는다고 천추의 한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겐 배고플 때 초능력자가 해준 김치볶음밥이 최고의 미식이니까요. 이럴 때 꼭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벌거벗은 임금님. 쇼에 한 번쯤 빠져들지는 몰라도 바보는 되지 말자고 자신을 달래 보는 아침입니다.


입이 떡 벌어지는 음식의 탄생에 대중은 열광합니다. 그러나 그 요리는 사막의 신기루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음식은 자주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평소 즐길 수 없는 음식이라는 것이지요.


배고플 때 슬리퍼 끌고 나가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면 충분히 행복한 음식이지 싶습니다.


음식의 탄생, 제겐 참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다 돈을 받고 파는 음식을 만들고 있지만 정말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식당을 하고 있는 저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고요.


며칠 전 다시 파스타를 만들었습니다.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었는데 초능력자에게 미안할 정도로 맛이 없었습니다. 면은 덜 익어 퍽퍽했고 마늘은 제대로 구워지지 않아 제 몫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어떻게 낙지파스타를 돈 받고 팔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이 최고의 음식이다. 그래서 음식의 탄생이란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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