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오늘도 감사합니다
그날은 역대급으로 손님이 없었지요.
역대급으로 손님이 없다 함은 하루 종일 몇 명밖에 오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친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오전 11시에 문을 열자마자 들어온 엄청 부지런한 불륜 커플(딱 보면 압니다)이 저녁에만 가능한 메뉴인 낙지해물파전을 시킬 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나쁜 예감은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지요. 명백히 그들 때문에 재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오고 나서 저녁 마감을 할 때까지 손님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처음에는 걱정이 되다가 나중에는 화가 나고 결국에는 체념하였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지? 내가 모르는, 손님들만이 아는 우리 가게의 어떤 큰 문제라도 생긴 거 아닌가? 누가 우리 식당 험담을 하고 다니기라도 하나? 밖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냐? 아이고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쉬어가는 날로 삼자고. 장사가 며칠 잘되는 날이 이어지다 보면 꼭 하루는 자빠지는 날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쉬운 마음에 푸념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그저 쉬어가라는 하늘의 배려로 여겨 이 또한 감사할 뿐입니다.
어쨌든 그날은 온갖 생각이 끝없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다시 새로운 날의 영업시간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점심부터 저녁 마감까지 꾸준히 손님들이 왔습니다. 제 마음도 다시 꽃처럼 활짝 피어났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주문하신 음식을 만들면서 제가 변해 버렸습니다. 전에는 맛있어져라 최고의 맛이 되어라 하며 웍질을 했는데 그날은 저도 모르게 감사 기도를 올리며 웍질을 하고 있는 거 있죠. 사람이 달라진 겁니다.
'이렇게 손님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 수 있게 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 가게를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식당을 하면서 세상 모든 만물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갑자기 착해진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배은망덕한 인간은 면하게 되었으니 식당을 하길 천만다행입니다. 젊었을 때는, 직장을 다닐 때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다 제가 잘해서 잘되는 줄로만 알았거든요. 힘든 일을 하면서 철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노동의 힘은 정말 대단합니다.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린 대가로 번 돈은 자신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식당의 주인이 된 이래, 저의 삶은 감사의 연속입니다.
진상 손님도 불륜 커플도 그들의 행위를 가볍게 보아 넘기지 못하는 저란 놈의 좁고 작은 그릇이 문제일 뿐입니다. 순간을 넘기고 보면 모든 것이 하찮은 일일 뿐인데, 그 작은 일에 연연하고 속상해합니다. 자존심이 상한다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피하지도 못하면서 자꾸만 불만을 갖고 화를 내고 타인을 원망합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놈이,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는 놈이 식당을 차린 것부터 감사해야 합니다. 코로나를 견디게 힘을 주신 신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재건축으로 진작에 쫓겨났어야 했음에도 지금껏 한 자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신 신께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한동안 뜸하여 잘 계시나 안부를 궁금해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조용히 식사를 하고 가시는 단골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잔잔한 미소로 잘 먹고 갑니다 하며 인사를 건네는 얼굴도 기억 못 할 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저 매사에, 범사에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지난주부터 토요일 영업을 쉬기로 하였습니다. 이미 일요일은 정기휴무였으니 일주일에 이틀을 쉬게 되었습니다. 대신 평일에는 마감시간을 1시간 연장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당장 어제의 일이었습니다. 뜻하지도 않게 4월 중순 무렵의 토요일 저녁 단체 예약 전화를 받지 않았겠습니까. 그것도 스무 명이나요. 그래서 어떻게 했나고요? 당연히 고민했습니다. 뭘 시작하자마자 고민을 하냐고요?
그게 이렇습니다.
토요일에 쉬는 이유는 말이죠, 몸이 너무 힘들어서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장사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나와 하루 종일 일해서 두 사람의 하루 최저 일당 이십만 원의 절반도 벌지 못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알바생이라도 부른다면 하루 매상은 고스란히 인건비로 지출해야 하는 겁니다. 남는 것이 없습니다. 부부의 인건비는커녕 재료비와 전기료도 못 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체 예약 손님은 유혹일 수밖에 없습니다.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잠시나마 망설였습니다. 그리고 수 초 후에 정신을 차려서 토요일은 정기휴무라 예약을 받을 수 없다고 정중히 거절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요즘 세상에 배부른 장사하고 있다고 욕을 했겠지요. 그러나 지쳐 쓰러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아쉽게도 혈기왕성한 시절은 이미 지나가버렸습니다.
잘했다고요?
그건 또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앞으로 정기휴무는 제대로 지켜 쉴 작정입니다.
돈 버는 기쁨을 기꺼이 휴식의 즐거움과 바꾸렵니다.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주 5일을 일할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말 이틀을 쉴 수 있게 해 주심에 또 감사드리고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