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난 뒤에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

위장이 예민한 사람의 식사 연습 — 프롤로그

by 헬레나

새벽 세 시가 넘어서 잠들었다.

눈을 뜨니 이미 오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늦잠에 대한 불안보다

먼저 든 감정은 감사함이었다.


창가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드는 따뜻한 빛.

어제도, 그제도 수없이 지나친 풍경인데

오늘은 처음 보는 것처럼 환하고 낯설었다.


가볍듯 무겁고, 무겁듯 가벼운 몸.

나의 지금은 여전히 치료 중이고,

그렇다고 예전의 나도 아니지만

그래도 분명히 어제보다 조금은 나아진 오늘이었다.


새롭게 눈을 뜨는 매일이 버거웠다.

특히나 그 시기에는 더 그랬다.

몸속 에너지를 끌어올릴 힘도 남아 있지 않고,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마음이 자꾸 흔들렸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달랐다.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내 안에서

아주 조용한 기척이 일어나는 듯했다.


커피를 내릴까 말까 오래 망설이던 걸음.

찬 물이 닿을 때의 순간적인 움찔거림.

내 몸이, 내 감각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는 조용한 증거들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건 과정의 일부구나.

내가 멈춘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 중이구나.


그 순간을 느끼는 나에게

예전의 나는 없었다.


매일같이 생각했다.

매일같이 되뇌었다.

버거운 몸과 마음을 끌고

하루하루 겨우 버티던 나에게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한 리듬이 있었다.


침대 곁을 비추는 빛,

따듯한 물 한 모금,

한숨처럼 내뱉는 숨.


그 작은 것들이 곧 내 회복의 속도였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늘 뭔가를 따라잡으려 했다.

남은 에너지를 다 써서라도

‘예전의 나’에게 돌아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나는 예전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아픈 뒤에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

그건 새로운 내가 살아갈 방향이었다.


다음 이야기

1화부터 3화까지 내가 걸어온 식사 연습의 기록을 따라

이제는 하루를 어떻게 구성하고 먹어야 하는지,

내 몸에 맞는 속도란 무엇인지,

조금 더 선명하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 여정의 첫 장이 바로 이 프롤로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