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카 여행

흑산도2

by 서정

3월이면 가슴 설레는 일이 생긴다. 매년 ‘모카짝꿍’ 여행을 기획하기 때문이다. ‘모카짝꿍’은 ‘이모와 조카는 단짝 친구’의 별칭이다. 이모가 정의하는 ‘모카짝꿍 여행’이란, 느껴지는 행복이 다른 여행의 기쁨, 나로서 나 일수 있는 여행, 함박웃음이 저절로 터지는 여행으로 내년에는 어디로 갈까나? 기대되는 여행이라고 했다.

우리는 12 굽이 정상에서 목을 축이며, 내려가는 길은 왔던 길보다 다른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흑산도를 더 많이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상라산자락 숲길을 선택했다. 마리재, 제2저수지를 거쳐 박득순 미술관을 지나 흑산면사무소로 내려오면 우리가 출발했던 흑산성당에 도착하게 된다. 그러면 선착장 부근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마지막 배를 타고 육지에 나가면 오늘 하루 일정은 아니 이번 흑산도 여행은 완벽하겠다고 생각했다.

흑산도아가씨 노래비에서 큰길 따라 더 걸으면 왼편에 마리재로 들어서는 숲길이 보인다. 입산 통제 차단기는 처음부터 우리를 통제하려는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우리를 환영하듯 무장 해제 상태였다. 비 온 뒤 흙과 소나무, 야생화들의 조화로운 향기가 코끝에 맴돌아 콧노래가 나왔다.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는 숲길은 순해서 걷기 좋았다. 날씨는 여전히 맑고 흐림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산과 산 능선 사이 운무가 내려앉았다.

맑은 새소리와 함께 이모의 늦깎이 직장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모는 올해 환갑을 앞두고 있는데, 2년 전 인생 첫 취업을 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처럼 꾸준하고 성실하게 학습을 즐기는 동안 자격을 갖추게 됐다. 더딘 컴퓨터 사무 활용 능력으로 스트레스는 받지만, 직장생활의 즐거움과 경제 활동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고 했다. 적금까지 넣고 있다며 자랑하는데, 조카로서 마음이 짠해졌지만, 이모의 낯빛에는 광채가 났다. 직장생활 선배로서 일을 통한 보람과 의미, 성취감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늦게 시작한 만큼 5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했다.

마리재를 지나 갈림길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맵은 좌측 거친 길을 향하는데, 걷기 좋은 길은 직선으로 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이리 저기 왔다 갔다 방향을 바꿔봤다. 구글, 카카오 맵을 번갈아 다시 검색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거친 길은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알 수 없었고, 좋은 길은 멀리 돌아가 배 시간에 맞춰 갈 자신이 없었다. 두 갈래 길에서 정답은 없지만 결단은 필요했다.

우리는 맵이 가리키는 거친 길을 선택했다. 두 갈래 길 모두 가보지 않는 길이지만, 배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는 길을 우선으로 했다. 거친 숲길, 나무를 해치며 내가 앞장섰다. 내리막길이고 가시넝쿨에 종아리가 긁혀도 아파할 여유가 없었다. 뒤따라오는 이모를 쳐다보며 안전을 확인하고, 맵을 확인하며 여전사가 되어 앞으로 향했다. 흡사 스카우트의 야영대회 같았다. 대범한 척했지만, 너무 긴장됐다. 뱀이 나타나지 않을까? 멧돼지가 출몰하지 않을까? 목 뒷덜미는 이미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그 상황에서도 다행인 것은 맵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우리는 ‘잘 가고 있어!, 조심해서 천천히!, 조금만 가면 될 것 같아!’ 힘이 되는 말로 서로를 위안했다. 그 찰나 모르는 번호로 전화벨이 울렸다. 휴게공간에 두고 온 가방의 소유주를 확인하면서 “아직도 흑산도에 계신 거예요?”, “네!, 곧 갈게요!” 전화는 짧게 끊겼지만, 우리의 생사여부를 확인해 주는 듯하여 고마웠다.


여유롭게 출발했던 상황과 다르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속이 탔다. 내려오다가 다시 중간 갈림길에서 주춤거렸지만, 간당간당 멘털을 부여잡았다. 민가와 공사중인 박득순 미술관이 보일 때 긴장이 풀렸다. 그제야 서로의 몰골을 확인하고 한바탕 웃었다. 얼굴은 땀자국으로 얼룩덜룩하고, 신발은 물기 젖은 풀잎과 흙이 긴박했던 상황을 말해줬다. 바짓단은 나뭇가지에 긁힌 자국이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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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해 ‘즐거운 놀이’ 흔적이 역력한 얼굴을 정리하고 가방을 챙겨 나왔다. 매니저가 나들이는 잘하셨냐며 친절하게 배웅까지 해 줬다. 하늘은 먹색이었다. 선착장으로 걸어가는데 허기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이모가 걷다가 “내 핸드폰이 없어? 전화 좀 해봐!” 말했다. 이건 또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전화를 걸어보니 신호만 갔다. 걸음을 멈추고 “잘 좀 찾아봐?, 어디에서 흘렸지?” 가방이며 옷이며 거듬거듬 만져봤지만 소용없었다. 내려오는 숲길에 흘렀다면 너무 절망적이었다.

그 순간 내 핸드폰에 ‘참 좋은 이모’가 떴다. 전화를 받으니 대뜸 내 이름을 부르면서 누구냐고 되레 묻는다. 숙소 매니저였다. 현재 위치를 묻고 핸드폰을 다행히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흑산도 길거리 한복판에서 안도와 감사의 웃음이 절로 나왔다. 고마운 마음에 ‘뭐 드릴 게 없나?’ 가방을 뒤적이다가 사탕을 찾았다. 작은 성의 표시라도 해야 될 것 같았다. 도착한 매니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드릴 게 사탕뿐이라며 건네자, 당신 명함을 주며 유튜브, 네이버 블로그 가입해서 따따블로 ‘구독, 좋아요’ 눌러달라고 사람 좋게 웃었다.

선착장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짬이 나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약국에 들러 뱃사람들이 먹는다는 멀미약도 구입해 배 타기 1시간 전에 먹었다. 강풍주의보로 육지에 나가려는 사람들이 선착장으로 하나, 둘 모였다. 그 많은 사람 속에서 특별히 조식도, 커피도 무료로 제공해 준 맑은 분과 눈이 마주쳤다. 옆에 있는 이모에게 “특별한 분 저기 계시네” 말하며 그분과 목인사를 나눴다. 저 특별한 분은 신부님일 것 같다고 이모에게 말했다. 주말 미사를 마치고 육지에 가는 거라며 나름 시나리오까지 완벽하게 구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묵었던 숙소가 흑산성당 피정의 집이었고, 숙소 매니저가 준 명함에도 가톨릭 세례명이 적혀있었다.

내가 십여 년 전에 일하면서 만난 사람 중 사제를 그만두고 취업을 준비하는 구직자가 있었다. 구직 상담을 하면서 사람이 이렇게 맑을 수가 있을까? 생각했었다. 몇 회기 상담을 진행하면서 과거 사제였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그만둔 이유는 묻지 않았다. 아직도 그 맑은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특별한 분’을 보니 아마도 사제가 아닐까? 합리적으로 짐작했다. 쾌속선에서 하선 후 한 번 더 마주쳤다. 여전히 맑은 눈빛이다. 특별한 분에게 평범한 인사로 시절 인연을 마쳤다.

육지로 돌아가는 쾌속선 안은 한결 평온했다. 멀미약 덕분인지 뱃속도 편안했다. 우리는 잼버리를 통해 기량을 맘껏 펼치고 의기양양 돌아가는 건강한 청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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