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시시한 행복

할머니보다 엄마고 싶다

by 서정

아들애가 ‘결혼하겠다’고 했다. 결혼생활이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닌 걸 알기에, 더 있다가 하지 뭐가 그리 급하다고 빨리 결혼하나 싶었다. 결혼 축하금으로 오백만 원과 아들애가 태어나서 두 돌까지 쓴 육아 일기장을 건넸다. 아들애가 “축하금을 이렇게 많이 주나요!, 그런데 축하금은 남에게 주는 것 아닌가요?” 너스레를 떨며 물었다.

평소 나는 ‘자기 인생은 스스로 세우자!’였다. 나 역시 “첫 결혼이니까 축하금 주는 거야!”라고 응수했다. 아들애는 오피스텔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1년 반 동안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태어나고, 이사하고 급물살을 제대로 타는 듯했다.


태이가 태어나고, 아들애는 나에게 가끔 태이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주변 사람들도 내리사랑이라며 손주가 얼마나 이쁘냐고 말했다. 내가 가타부타 반응이 없자 아들애가 “엄마, 나 태어났을 때와, 지금 태어난 태이랑 누가 더 예뻐?” 물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솔직히 말해도 될까?” 했더니, 막 웃으며 “내가 더 예뻤구나!” 했다. 나는 속내를 들킨 것 같아 “건강하면 됐지!, 태이가 계속 잘 생겨지길 바래!” 하며 따라 웃었다. ‘한 치 걸러 두 치’라는 말을 실감했다. 지금은 손주, 며느리, 할머니 이런 단어가 무척 어색하다.


내가 생각할 때, 아들과의 내적 친밀감은 높지만, 연락을 자주 하는 사이가 아니다. 그래서 드문드문 일이 있을 때 주로 아들애가 연락을 취했다. 어느 날 아들애한테 아파트에 입주한다고 연락이 와 일간 한 번 가겠다고 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잘 설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대견했다.


직장 생활하면서 웬만하면 월요일에는 휴가를 쓰지 않았다. 처음 회사 입사했을 때 선배들이 ‘월요일부터 휴가 쓰는 거 아니다’라고 배워서 그런지 옛사람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아무튼 아들 내외가 새로 입주하는 집에 가기 위해 특별한 휴가를 냈다.

아들애는 7년 차 청년 CEO로 개인 사업을 하고 있어 주말이 더 바쁘기 때문이다.


아들애가 어렸을 때 나는 참 극성맞은 엄마 부류에 속했다. 피아노, 바이올린, 미술, 검도, 영어, 컴퓨터 등 짬 날 시간 없이 아들애를 학원으로 뺑뺑이 돌렸다. 직장 다니는 엄마가 아들애를 관리하는 방법이라고 초보 엄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들애는 가끔 학원 수업에 무단결석하는 것으로 소심한 반항을 했지만 그래도 무탈하게 잘 자랐다. 걱정을 사서 하는 초보 엄마는 청소년 시기 아들애가 ‘밥값 못하는 사람이 될까!’ 노심초사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공부에 취미가 없다며 고등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아들애는 선언했다. 폭탄 발언에 사람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르고, 공부 안 해도 좋으니까, 일단 고등학교는 가야 된다고 설득했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동안은 보란 듯이 볼펜만 들고 학교에 갔다. 담임선생님과 면담도 몇 차례 했다.

아이는 착한데, 꿈이 없다고!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갈 무렵 “엄마! 나 그림 그려볼까?” 그래 뭐라도 해보자! 싶어 당장 입시 미술학원을 알아보고, 바로 등록했다.

아들애는 학교 공부보다 학원 출석에 더 집중했다. 뭔가에 집중한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들었다.


그해 늦가을 아들애는 미술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수상 소식을 제일 먼저 나에게 알리며 “엄마, 나 사실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 입시 미술도 늦게 시작했고, 다른 애들은 대회 나가서 상도 척척 받는데, 나는 상도 못 받고 괜히 미술 한다고 했나 후회했지만 내가 하겠다고 말해서 도중에 포기한다는 말도 못 하겠고, 정말 하루하루 버텼어!”라며 속엣말을 했다.

버텼다는 말에 “아들 최고! 최고!” 말했지만 눈물이 핑 돌았다. 늦가을 대상 수상을 변곡점으로 1년 동안 아들애는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휩쓸었다. 대상, 특별상 포함 다수의 상으로 원하는 대학에 수시입학했다. 본인이 다니는 학원에서 2년 보조강사로도 활동했다.


그렇게 미대생이 되어 제 세상 만난 듯 즐거운 대학 시절을 보냈다. 2학년 가을 사고가 났다. 오른손을 크게 다쳐 병원에 두 달 반 동안 입원했다. 큰 수술도 두 차례 진행됐다. 언제나 ‘괜찮아!, 괜찮아?’ 초긍정인 아들애가 병상에서 싱겁게 웃으며 “엄마, 내 좋은 기운은 이제 다 썼나 봐!” 말했다. 별소릴 다 한다며 운이 좋으니까, 큰 사고가 났어도 다섯 손가락은 무사하지 않냐며 애써 위로했다.


바람마저 따뜻한 화창한 월요일 정오. 하루에 한 번 KTX가 정차하는 곳에 내리니 아들애가 마중 나왔다. 훤칠한 키에 웃는 얼굴상인 아들애는 언제 봐도 엄마인 나를 기분 좋게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태이가 밥 먹을 시간이라서 향기는 차에 있다고 했다. 벌써 자기편 커버 쳐줄 줄도 안다 싶어 웃음이 나왔다.

점심시간에 도착했기에 우리는 바로 식당으로 갔다. 식사 시간에 엄마와 자기편 모두 두루두루 챙기는 섬세함을 보며 아들애가 ‘어른이 돼 가는구나’ 생각했다.


소재지가 작은 군 단위라 차로 왔다 갔다 하면 그 지역 랜드마크처럼 떡 버티고 서 있는 아파트를 가리키며 ‘본인이 사는 아파트’라고 아들애는 으스댔다. 나 역시 “충분히 자랑할 자격 있어!” 말했다. 아파트는 입주하는 시기라 어수선했지만, 읍사무소 주변에 자리 잡고 있어 인프라가 좋았다.

집안은 이사하고 며칠 안 돼 물건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세 가족과 반려견이 함께 살기에 넉넉한 평수로 전망도 좋았다. 입주 선물로 원하는 것을 선물하겠다고 하니, 가열식 가습기와 에어프라이어를 요청했다.

입주 선물로 좀 약한가 싶었지만, 턱없이 비싼 선물도 과하다 싶었다. 개중에 괜찮은 걸로 주문해서 보내줬다. 고맙다고 인사하는 아들애를 보며 작은 물건에도 소중함과 감사할 줄 아는 인생을 살고 있어 퍽 다행이라고 느꼈다.


아들애는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 했지만 나는 나대로 봄날 근사한 약속이 있으니, 걱정은 접어두라고 했다.

언제나 관계에서 적당한 선은 필요했다.

나는 숙제를 마친 홀가분한 마음과 여운을 안고 플랫폼에 왔다. 기차를 기다리며 아들애가 좋은 터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갈 생각을 하니 내 마음속에 온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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