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나만의 위한 시간 : 숙대 앞 독립서점 '죄책감'
지방의 한 도시에서 책방지기를 꿈꿨던 나는, 책방 시장조사를 떠난다는 명분을 지니고선 혼자서 서울 독립서점투어를 계획했다.
실은 어릴 적부터 서점을 원체 좋아했기에 언젠가 서울 독립서점투어를 한 번 가야지 싶었는데 이번에야말로 실행에 옮기기에 적합한 시기라고 생각했던 것. 더구나 막연히 그 공간을 향유하는 고객의 입장을 넘어 책방이라는 공간의 레퍼런스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업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듣는 생생한 현황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런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떠나는 서울 독립서점투어이기에 최대한 시간을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가고 싶은 책방들 장소를 마구잡이로 북마크로 지정했다.
당시 다른 업계에서 자기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지인은 내게, 주변에서 사업을 하기 전 이렇게 시장조사 하러 서울까지 다니는 사람들 많이 없다며 대단하다고 칭찬을 했다.
낭만주의로 가득 찬 나의 삶이지만 현실적 낭만주의자인 나는, 낭만 하나 가지고만은 나의 꿈을 막연히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 기간 중 만난 타인도 내게 왜 이렇게 준비를 철저히 하는지 물어보는 걸 보면 역시 사람마다 모든 것의 기준이 다 다르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마구잡이로 지정해놓은 서점들을 구마다 묶어서는 하루에 2-3개의 독립서점을 방문할 수 있게 일정을 짰다. 올라온 김에 나와 동갑이자 책방지기를 꿈꾸는 이와의 커피챗과 서울에서 이미 자신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지인까지, 책방이라는 공간 방문을 넘어 그곳에서 있는 사람들까지 만나고 오는 아주 알차디 알찬 일정이었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숙대 앞에 2층에 위치한 책방이었다. 어쩌면 이곳을 가장 첫 번째 책방으로 선택해서 온 것은 마치 운명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몇 달 전 서울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올라왔을 때 우리의 저녁은 숙대 앞에 위치한 유명한 중화요리 전문점이었다. 음식점을 가는 길에 이 책방의 옆테에 적혀있는 책이란 가장 깔끔하고도 명료한 글을 보고서는 바로 사진을 찍었다. 불이 꺼진 입구에 눈과 코를 박고서는 친구에게 다음에 꼭 와야겠다며 연신 아쉬움을 나타냈었는데 어쩌다 보니 서울 독립서점투어 그 대장정의 첫 선택지가 되었던 것!
그날과는 다르게 불이 켜진 문을 열고서 2층으로 걸어올라,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중년의 남성분이 계셨고 우리는 조용히 최소한의 인사를 서로 나누며 다시금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책방에 방문하기 전에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서 이런 분위기이겠거니 생각하며 입장했는데 실제로 느낀 이곳은 훨씬 더 아늑하고 깔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내 눈에 띄었던 것은 책방 이용 방법이다. 책방 사진은 자유롭게 찍으시고 널리 공유해 달라는 문장뿐만 아니라 가장 마지막에 적힌 책방지기는 여러분의 말을 기다립니다라는 문구의 가장 아래 상단에 있던 "카운터 안에서 바쁜 척 하지만, 솔직히 여러분이 어떤 분인지, 어떤 책을 좋아하시는지 무척 궁금합니다."라는 글에서 나는 아직 인사 밖에 나누지 않은 책방지기의 성향과 인품이 느껴졌다.
다소 특이한 이름을 지닌 해당 책방은 콘셉트에 아주 충실한 곳이었다. 콘셉트와 큐레이팅의 혼연일체를 보여주었고 무엇보다 그래도 책을 꽤 책을 읽는 편이라고 자부하는 내게도 생소한 주제의 책들이 많았기에 다양한 책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나는 평소 사람들과의 대화를 아주 중시 여기는 사람인데 그 대화를 위해선 '대화의 품'을 파는 게 중요하다 생각한다. 각 공간과 사람마다 어떤 품을 팔지 다르겠지만, 책방에서 단연 책을 구매하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최근에 나온 신간 중 평소 눈여겨보는 책 한 권을 들고서는, 이 책을 계산하고 나서 어떻게 자연스레 책방지기와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게 좋을까 생각했다.
다행히도 나는 처음 보는 이들과 대화도 잘 나누는 경계의 허들이라고는 정말 낮디 낮은 사람이자 N연차 독서모임 호스트를 하고 있는 사람인터라 책방지기이신 사장님과 바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당신이 부럽다며 진심인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경상도에서 30년간 나고 자란 사람이지만 원체 사투리가 심한 편이 아니었고 더구나 올해 근 1년간 스피치를 배우며 사투리 교정이 아주 잘 된 편이라 사장님은 내가 지방에서 온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셨다. 지방에서 책방을 차릴려고 한다며 이야기를 했고 어느 지역이냐고 여쭤봐서 말씀했더니 사장님은 무척 반가워하셨다. 당신께서 젊은 시절에 5년 동안 살았던 곳이라고 하셨으며, 그 지역에도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승산이 있을 것 같다며 긍정적으로 내게 말씀해주셨다. (본업과 함께 병행한다는 과정하에, 사장님께서 N잡을 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근래에 사람들에게 책방을 열겠다고 하면 다시 생각해 보라며 현실은 다르다며 다소 부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던 터라 사장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던지.
서울독립서점 투어 당시 꽤 많은 공간과 책방지기들을 만나보았지만, 이곳 사장님과 함께 나눈 대화들은 단연 손꼽을 정도로 좋았다. 너무 낭만만 가득 찬 따뜻함이라기보다 가장 마시기 좋고 적당한 온도의 라테처럼 적당히 따뜻하고 온기가 가득했다랄까.
지금 생각해도 이곳이 독립서점 여행의 첫 시작지여서 정말 행복했노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