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 이름은 운명인 걸까?

황량한 세상에 색칠 놀이

by 손정인

6학년때였나,

선생님이 수업 중 그런 말을 하셨다.

사람은 이름 따라 살게 되어서, 아프리카에서는 아이 성격을 보고 이름이 바뀌는 국가도 있다고.

그리고 17이 된 나는 아프리카가 조금은 부러워졌다.

나보다 힘든 사람 있는 것을 아니까,

과격하게 인생**이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솔직한 말로는 나도 이 이름이 아니었으면, 좀 더 나답게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은 든다.

왜냐면, 나는 성급한 사람이고 감정도 풍부하다. 게다가 나는 누군가의 밑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리더는 맞아 죽어도 싫은 사람이다.

그런데 하필 이름은 정치 정에 인내할 때 인으로 정인이다. 뜻을 풀자면 다스리고 인내한다는 것이지.

참,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이름 아닌가?

물론 사주에도 나는 저런 사람이라 나오기는 하지만, 솔직한 말로는 사주처럼 될지라도 이름 따라 살게 되는 습성 덕에 좀 더 빠르게 자신이 억눌린 거 같다.

내 느낌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래서일까, 나는 억울함이 많다.

특히 나는 내 딴에 엄청 인내하고 참으며 살아왔는데. 부모 앞에서 그게 어려웠던 탓에, 그렇게 살아온 인생을 항상 부정당하고 살았다.


물론 진짜 억울한 건 그렇다고 부모 앞에서 때만 쓴 것도 아닌데,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이다. 8살 때 두 사람이 너무 안 맞으니 따로 산다고 했을 때 아무 저항도 없었고, 어머니가 그 이후로 나보다 자신의 인생이 훨씬 중요해져서, 매일 늦게 들어오고 외박 자주 해도 엄마에게 크게 입 때지 않았다.

게다가, 나도 때를 쓸 나이였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때에도 엄마 친구들 탓에 자주 만났던 동생들에게, 매번 장난감 뺏겨서 때 한번 쓰면 집에 가자 협박당하고, 세상 모든 걸 양보하란 듯 굴어도 나는 따랐다.

그렇게 하면 칭찬이 돌아올 줄 안 것도 있었고. 뭐 못했을 때 뭐라 하는 거 있어도 칭찬은 없었지만, 따르면 평화는 왔으니 그걸로 됐었다.

물론 어머니가 하도 동생에게 굽히고 살게 가르친 덕에, 정신적 성장이 빠른 편이었던 나는 또래애들조차 그리 보여서 언제나 억누르고 살았다.

그러니 학교가 조금이라도 좋아졌을 리가.

어쨌거나 그런데 제정신으로 살았겠는가? 인내 이야기라서 꺼내지 않았을 뿐. 6살 때는 유치원 선생에게 왕따까지 당한 내가 무슨 수로 제정신 유지하고 살겠는가.

그저 행복지수 높은 척 살아왔을 뿐. 멀쩡한 척 연기했을 뿐.

나는 이미 초3 때부터 비관적인 생각 속에 가두어진 상태였고, 그 결과는 친구들과의 싸움과 억울함의 연속일 뿐이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다스릴 정에 인내할 인을 가진 아이였으니까.

웃을 수 있었다.

그래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6년쯤이야, 왕따로 살 수 있고, 아이들이 크면 나랑 맞을 테니 버틸 수 있었다.

근데, 이걸 어쩌나? 중학교 생활은 더 처참했다.

입학하자마자 은따에, 그나마 있던 무리에서는 정치인 이재명 소리 들으며 범죄자라느니 정치욕 을 전부 매일같이 들어야 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의 인내심은 끝났다.

결국 나는 때렸고, 친구였던 누군가를 때렸단 사실과 여태 쌓아온 인내가 망가졌다는 것에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죄책감과 무력함에 빠져서는 매일을 헤매며 살았으며, 학교는 더 이상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유치원 때도 선생님에게 왕따였고, 초등학교 때도 작은 동네 이사오자마자 입한 아이라 왕따였는데. 중학교마저 그랬고, 무리에서조차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게.

그리고 내가 모든 걸 참아내지 못하고 터졌다는 게.

별 일 아닌 거 같지만, 멘탈 약한 나에게는 지옥과 같았다. 그저 어렸던 나는, 아직 무르익은 잎이 아니라 낙엽이 될 수 없었을 뿐.

결국 나는 중학교생활을 똑바로 못하고, 고등학교만 보며 살았다. 그저 거기에 가면 새시작이야, 괜찮을 거야라며.

물론 안타깝게도 대안학교에 들어간 나는, 7세 아동의 정신연령을 가진 아이들의 심한 장난들 받아주며, 인내하고 다스리다 폭발해서 나왔다.

그래 마지막 희망조차 깨졌고, 내 인내심은 또 깨졌다.

그 와중에 인터넷에서는 4년가량 되는 시간 동안, 잼민이 대장으로 또 다스리고 인내하고 살았다.

내 이름이란 운명덕에 인터넷에서 치유받던 아이들이 한동안 멈춰 서게 될 수도 있으니 인내심이 깨진 그날 이후에도 말이다.

애초에 인내심 폭발하고 가장 무너진 것은, 내 역할 못했다와 결국 도움 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던 사람이었으니까.

어찌 됐건, 참 재밌지 않은가? 이름이라는 운명 하나 때문에, 세상이 나를 미워하는 수준으로 인생이 꼬이는 것 말이다.

나는 아프리카의 그 이름 모를 국가가 부럽다. 이 이름이 아니었다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 때문에.

정인이란 이름이 나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나는 인내심 없어서 죄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 때문에.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고, 운명에 저항하면서도 수용하며 원만한 합의를 보는 과정이 아프기 때문에.

무너지고 부러움과 절망 안에 사로잡히지만, 나라는 사람의 그 역할 덕에는 누군가 행복해지고, 그 경험들 덕에 성장한 나를 생각하면

그 국가가 부럽지만,
나는 여기 태어난 대로
앞으로 이 이름과 싸우며
사랑하고 살아가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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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따라 무거운 글만 나오는 거 같아 고민이네요.

개인적으로는 서정적인 글을 쓸 때가 재밌기도 하고, 독자님들도 편할 거 같아 좋은데 말이죠.

아직 어린아이라서,

감정이 주체가 안되네요.

아무튼 저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있습니다.

이름처럼 살게 된다 하여도 저항은 해보셨음 해요.

운명은 운명이고,

인생은 인생이니까요.

사실 그 말을 전하고 싶어서 쓴 글인데,

어쩌다보니 구구절절 이어졌을 뿐인거라.


아무튼

다들, 오늘 하루도 힘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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