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by LISA

예전에 있던 부서에서는 한 번씩 인턴을 뽑곤 했다. 말이 인턴이지 사실상 받아치기 요원이었다. 그럼에도 취업난 때문인지 최저 기본급에 정규직 전환이 안되는데도 1명 뽑는데 100명씩 지원하곤 했다. 심지어 상당수가 스펙도 뛰어나 서류 심사부터 머리가 아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내가 뽑았던 인턴이었다. 가장 오래 함께한 인턴이기도 하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문학 분야에서 등단까지 한 친구였다. 이런 고급 인력을 현장에 돌리며 시답잖은 받아치기를 시키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지에 대해 늘 고민했다. 하지만 그녀는 늘 해맑게 현장의 워딩은 물론 분위기까지 시시콜콜 재밌게 전해주곤 했다. 지각이나 누락도 한 번 없었다. 하지만 1년 11개월이 지났을 때 나는 그녀를 보내야 했다. 2년 이상 데리고 있을 수 없었으니까. 당시의 무력감은 꽤 컸다. 단순히 취재 편의를 위해 누군가의 젊음을 착취한 건 아닐까 생각까지 들었다.


그녀는 거의 2년을 함께 일하면서 매년 우리 회사 공채에 지원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면접까지 올라가면 분명 가점이 있을 텐데 서류와 필기를 넘지 못해 도울 방법이 없었다. 헤어지는 날에는, 등단까지 한 문학도가 이런 곳에 있지 말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어쭙잖은 위로를 건넸다. 딱히 적절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당시엔 그보다 나은 인사가 떠오르질 않았다.


이후에도 그녀가 눈에 밟혀서 이따금 불러내 밥을 먹곤 했는데, 상도 치르고 구직 기간도 길어지면서 오래 힘들었던 듯했다. 오랜만에 만날 때마다 집에만 있으니 우울해서 대형서점 창고에서 책을 분류하는 알바를 했는데 인류애가 박살 나더라는 웃픈 일화부터 문화부 인턴 출신답게 최신 콘텐츠와 연예인들을 줄줄이 꿴 이야기까지, 여전히 해맑은 얼굴로 들려줬다.


그러다 내가 격동의 시기를 보내면서 연락이 뜸했고, 최근 근 3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녀는 오래전 나의 짐작대로 학교에 돌아간 상태였다. 학위도 눈앞에 뒀고, 연구직도 하고 있었다. 각자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괴짜 박사님들 사이에서 괴롭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한결 편안해 보였다. 임화에 대한 리포트를 쓰고 있었는데 계엄이 터진 걸 보고 순간 잡혀갈까 걱정했다는 농담 - 이 아닌가..? - 에선 고향으로 돌아간 자의 여유도 느껴졌다. 그녀와 오랜만에 찾은 삼청동 일대 밤길을 한참 걸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었더니,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 지난 1년 11개월의 미안함도 조금은 가셨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나의 이야기도 꽤 많이 한 것 같다. 이제는 인턴이라기보다 다른 영역에서 살아가는 동료로 느껴져서였을 수도 있겠다.


돌아오는 길에, 임화의 작품 중 하나가 얼핏 떠올라 다시 읽으니 지금에야 더 와닿는 부분들이 있었다. 늘 말의 무력함과 말로써 하는 위로의 어설픔에 괴로워하지만, 결국 그걸 복원하고 치유해 내는 것은 또한 글이라는 차원에서.


지상의 시


태초에 말이 있느니라······

인간은 고약한 전통을 가진 동물이다.

행위하지 않는 말,

말을 말하는 말,

이브가 아담에게 따 준 무화과의 비밀은,

실상 지혜의 온갖 수다 속에 있었다.


포만의 이야기로 기아를,

천상의 노래로 지옥의 고통을,

어리석게도 인간은 곧잘 바꾸었었다,


그러나 지상의 빵으로 배부른 사람은

과연 하나도 없었던가?

신성한 지혜여! 광영이 있으라.


온전히 운명이란, 말 이상이다.

단지 사람은 말할 수 있는 운명을 가진 것,

운명을 이야기할 수 있는 말을 가진 것이,

침묵한 행위자인 도야지보다 우월한 점이다.

말을 행위로,

행위를 말로,

자유로 번역할 수 있는 기능,

그것이 시의 최고의 원리.

지상의 시는

지혜의 허위를 깨뜨릴 뿐 아니라,

지혜의 비극을 求한다.

분명히 태초의 행위가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00일, 너를 사랑할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