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wins all
** 20년 지기 A가 결혼하며 축사를 부탁했다. 결혼식 축사는 해본 적이 없어 관례도 형식도 몰랐지만 A라서 그저 마음을 담았다. 현실은 현실인지라 여느 예식과 다른 분위기였던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조금 울컥했지만, 기운만큼은 충만했기에 나도 마음을 충전받고 왔다. 나는 A의 전사(前史)를 제법 알고, 지난 세월 종종 같이 울고 웃었다. 그러다 A가 지금의 반려를 만나고서는 제법 편안하고 단단해졌다고 느꼈다. 살면서 고비들이 또 있겠지만, 큰 걱정은 안 된다. 돌아오는 길에는, 두 사람이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영원히 함께 걷기를 축원했다. **
사회부에 있을 때, 이따금 성소수자들의 혼인신고나 헌법소원 소식을 접하곤 했습니다. 매년 퀴어 축제를 앞두고는 종교 단체들과 성소수자 단체들 사이에 껴서 시청 건물에 감금됐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 이슈들을 노트북 앞에서는 단지 일로써 무미건조하게 처리하면서도, 퇴근길에는 늘 마음 한편에 친구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잘 알아왔다고 하지만, 과연 나는 얼마나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내 친구는 정말 괜찮을까, 살면서 자주 힘들고 아프지 않을까.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서서 친구를 보니 예상했던 것과 달리 걱정보다는 기쁨이 크다는 걸 느낍니다. 20년 이상 지켜봐 온 제 친구는 언제나 빠르지만은 않았지만, 늘 씩씩하게 정도를 걷는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삶의 중간중간 우여곡절을 보면서도, 위로는 했지만 크게 걱정한 적은 없었습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똑바르게 걸어 나가서 결국에는 이뤄낼 것을 항상 믿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과업 중 하나인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서도 그 믿음은 더 커졌습니다.
결혼식을 앞두고 축사를 부탁하면서 소개해준 신부를 만난 후에는 더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신부님을 처음 만났지만 분명하게 느껴진 것은 차분한 자유로움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여행을 간 일화를 들었는데, 작은 것 하나도 계획해야 마음이 편한 친구가 신부의 무계획 앞에 충격받았다는 이야기에 속으로 많이 웃었습니다. 늘 어깨에 가득 짐을 진 채로 조심스럽게 정해진 길을 따라 걸어온 제 친구에게, 신부님의 차분한 자유로움이 삶에 다채로움을 선물해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안 되는 게 삶이고, 그래서 재밌다는 것도 알아가게 되지 싶습니다. 신부님은 누구보다 사람을 오래 관찰하고 연구해 온 분이라서, 누구보다도 제 친구를 냉정하면서도 다정하게 바라보고 또 지탱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고마운 마음입니다. 친구에게 신부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니, "내가 전쟁에 나간다면 말리기보다 갑옷을 챙겨서 입혀줄 사람"이라고 한 답에서도 확신을 느꼈습니다. 이야기하다 보니까 친구가 부러워지네요. 전 얘기도 안 하고 나갔다가 전쟁터에서 만나고는 서로 황당해할 것 같거든요. 이렇게 되시면 안 됩니다.(웃음)
결혼은 하는 것도 어렵지만 한 이후에도 쉽지만은 않다는 걸 우리는 잘 압니다. 인생이 그렇듯이 결혼 생활 역시 대부분의 날은 지루하고, 생각보다 자주 힘들며, 알아차릴 정도로 좋은 날은 손에 꼽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레이스나 전투가 아니기 때문에, 끝까지 같이 걷기만 한다면 실패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분이 때로는 같이 신나서 뛰어가더라도, 때로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업고 느리게 걸어가더라도, 심지어 같이 뻗어서 쉴 때가 있더라도, 끝까지 함께이길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희로애락의 감정도 충분히 느끼길 바랍니다.
축사를 준비하면서 친구와 처음 알게 된 때를 잠시 떠올려봤습니다. 교복 입던 시절, 제가 친구에게 다소 날카로운 말을 던진 일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고, 사실 별 일도 아니었을 텐데, 친구는 변명하거나 화내지 않고 제 이야기를 들어줬습니다. 그게 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받아들인 표정이었던 게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짧은 커트 머리에 너털웃음 짓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그래서 신부님은 걱정할 게 없을 것 같습니다. 때때로 부부싸움을 하면 목소리는 크겠지만, 아닌 걸 알면 바로 납득도 잘하는 게 제 친구거든요. (웃음)
두 분 축하드리고, 오늘 기쁜 자리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께도 두 사람의 사랑처럼 진실한 사랑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청첩장에 '결국 사랑이 이겨낼 미래'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언제나, 'Love wins all'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