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by LISA

계엄과 탄핵, 대선과 정권 교체 국면에서 '조선 보수'들의 각자도생을 낱낱이 목격하고 있다. 진보 진영도 계파 내분이 고질병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은 배고팠던 역사가 훨씬 길기 때문인지 그들에게는 절박함에 따른 집요한 결집력이 분명히 있다. 반면, 조선 보수들은 결정적인 위기에 늘 각자도생의 이기심을 발휘한다. 생계형부터 차기 선거 준비까지 표면적인 이유는 다양하지만 근본은 절박함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물론 위급한 순간 각자도생을 꼭 탓할 수는 없겠지만, 안팎에서 보기에 모양새가 영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각자도생 하려다 보면 당연히 종종 내부 총질을 하게 되는데, 그걸 상대 진영에 꼭 노출해서 웃음거리가 되면서도 멈추지를 못하는 게 참 신기하다.


헌재의 8대 0 탄핵심판 인용에 많은 조선 보수들이 최대 로펌이 개입했네, 누가 막판에 식사에도 안 나오더니 역시 배신자였네 하는 설을 아침저녁으로 잠을 깨워가며 풀어댔다. 텔레그램은 흐린 눈으로 체리따봉만 보내줘도 되지만 전화는 상당히 고역이었다. 한 번은 잠결에 듣다가 "다 끝났는데 무슨 소용.."이라고 무심코 웅얼거리다 급히 주워 담기도 했다. 그 와중에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잡음을 두고는, 보수 진영에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논리와 처세를 '진짜 빨갱이'가 들고 나와 속수무책이었다는 꽤 재밌는 분석을 내놓는 사람도 있었다. 또 누군가는 우리 민족에게 콜로세움 정치 습성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넥스트' 역시 높이 떠받들어진 만큼 더욱 짜릿하고 재밌게 목이 베일 거라 예측했다. 하지만 여러 장광설도 잠시, 재건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고 역시 각자 탈출하거나 동면을 준비하기에 바빴다. 파괴가 있어야 변화도 있을 텐데, 파괴에 몸 바쳐 동참하기엔 역시 조선 보수들은 겁이 많다. '탄핵을 두 번이나 겪어서...'와 '탄핵을 두 번이나 겪고도?' 중 어느 문장이 설명에 더 적합할까.


마찬가지로 미리 탈출에 성공한 한 명과 오래전 잡아둔 약속이 근래에 있었다. 그는 속세에서 과가 매우 많은 인물로 평가되지만 내게만큼은 은인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와 조직을 크게 구해주었기에 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보은 했다.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리스크도 적지 않았던 만큼 할 도리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오늘, 예상대로 약속을 미뤄야겠다는 연락이 왔다. 수사를 피해 도미 중인듯했다. 도와준 것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보기 어려울 거라는 것도 굳이 부연할 필요 없이 서로 알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각자도생의 순간이 온 것이다. 한때는 휴대전화를 바꿔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그가 이미 몇 번이나 바꿨다는 기사를 본 덕분이다. 난 조선 보수는 아니라고 생각해 왔지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