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명리를 공부해 본 적은 없지만 힘들었던 시기 귀동냥 하다 보니 큰 줄기는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됐다. 처음에는 단순히 앞날이 궁금해서 귀를 쫑긋 했지만 언젠가부터는 나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돼서 흥미로웠다. 내 사주팔자에 대한 역술인들의 해설에는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 그중 하나는 오행을 모두 갖췄다는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좋은 것 아닌가 싶었는데 세상만사 그렇듯 갈수록 단점도 작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오행이 고르면 균형을 잡기에 유리할 것이다. 감정, 논리, 직관, 행동, 현실 중 어떤 세계에 던져져도 결국에는 중심을 찾아내서 적응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모든 감각이 열려 있다는 것은 결국 에너지 소모도 다른 사람들보다 빠를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오행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작동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물과 쇠가 함께 있으니 감정을 세밀하게 느끼면서 동시에 그 감정을 머리로 해석하려고 한다. 감정을 단순히 느끼기보다 분석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니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다. 또 불과 나무가 함께 있으니 무언가 해야겠다는 욕구와 멈추고 싶다는 신호가 하루에도 수없이 공존한다. 에너지가 급상승하기도 급하강하기도 하므로 번아웃에 취약할 수 있다. 요는, 각 원소가 제 역할을 다하려고 내면에서 각자 순환하니 체력과 정신력을 갉아먹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필요한 것은 가끔씩의 '셧다운'인 것을 안다. 나의 사주는 마치 소리가 풍성한 오케스트라 같지만, 지휘자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연주가 혼란한 소음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행을 다 갖추면 완전체가 될 수도 있지만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 있는데, 비슷한 맥락일 것 같다. 하지만 내게는 셧다운이 가장 어려운 과제라는 게 문제다. 그렇다면 플랜 B로 우선순위라도 잘 구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물과 불의 공존(또는 충돌)도 눈에 띈다. 나의 사주는 표면적으로는 불이 두 개인 게 눈에 띄지만 조합을 해보면 물도 꽤 많은 구조라고 한다. 감정과 직결되는 물이 기능을 과도하게 발휘하기 시작하면 우울감에 빠질 수도 있다. 예컨대 시기적으로 물의 기운이 강할 때면 이런 위험도 커진다고 분석해 볼 수 있겠다. 다행인 점은 역시 불의 존재다. 나의 불은 물을 증발시키는 뜨거운 불은 아니라고 한다. 물이 반짝일 수 있게 비추는, 빛에 더 가깝다는 해석이 있다. 무언가를 태우지는 않는 따뜻함이라서 오히려 희망적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물의 온도를 바꾸기보다는 물이 성질 그대로 빛나도록, 그리고 고이지 않고 흐르도록 돕는 방향으로 불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은 물대로, 타인과 세상의 일들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근간이 되니 늪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귀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결국은 공기가 없는 심연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이란 것을 실재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를 시험받고 증명해 내는 과정이 내 삶의 근원적인 과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