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ISA

내게는 외가에 삼촌이 세 명 있다. 모두 거의 교류 없이 살아왔다. 그래서 딱히 큰 추억이나 기억도 없다. 그래도 그 중에 둘째 삼촌은 똑똑하고 선한 분으로 기억한다. 가끔 만나면 큰 말씀은 없으셨지만 표정과 말투가 늘 온화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뵌 건 수 년 전인데, 사촌 언니의 결혼식에서였다. 오랜만에 본 삼촌이 너무 늙어 보여서 순간적으로 눈물이 많이 났고, 잔칫날에 실례를 한 것 같아 죄송했던 생각이 난다. 그게 엊그제 같은데 몇 일 전 삼촌의 부고를 접했다. 작년에 큰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었는데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한다. 일흔여섯이니 한참 더 사실 수도 있었는데 안타깝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세상에 큰 미련이 없어 보였다"고 했다.


삼촌은 유년부터 총명했고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이후로는 삶이 잘 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젊은 시절 한 쪽 눈을 잃은 영향이 컸다고 들었다. 엄마가 가족 눈 건강에 굉장히 예민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 안경을 썼을 땐 엄청 울었다.) 그래도 삼촌은 유복한 집안의 숙모를 만나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두고 삶을 이어왔지만 그리 행복한 삶은 아니었던 것 같다. 딱히 달리 할 수 있는 게 생각나지 않아서 집 근처 성당에 들러 위령미사 헌금을 내고 성모상 앞에 초를 켰다. "하늘에서는 그저 평온하게 쉴 수 있게 해주세요. 저는 제가 알아서 할테니 엄마가 마음이 평안할 수 있게 지켜주시면 좋겠어요. 하나뿐인 여동생이니까요"라고 기도했다.


빈소에서는 교류가 없었던 첫째 외삼촌과 첫째 외사촌 언니, 외사촌 오빠, 집안의 어르신들과 만났다. "엄마를 많이 닮았네", "네 엄마가 고집이 참 셌는데" 같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이 나이 먹도록 빈소에선 어떤 표정을 짓고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영정과 제단은 깔끔했다. 국화가 없어 향을 피웠다. 첫째와 외사촌 언니의 아들이 동갑내기답게 꺄르르 웃으며 잘 놀아서 괜히 뭉클했다. 아이들은 늘 어른들을 위로한다. 나오는 길에는 달이 유난히 크고 밝았다. 성당에서 했던 기도를 한 번 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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