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점점 빨리 간다. 연말마다 후회와 아쉬움도 갈수록 커진다. 왜 이런 결과밖에 내지 못했을까- 하는. 하지만 올해는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또 응원해주고 싶어졌다. 마흔 번째 송년이니까.
올해는 둘째와 무사히 만난 것을 빼놓을 수 없다. 갖은 대관 스트레스 속에서도 출산 당일까지 출퇴근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나의 뜻을 존중하듯 퇴근 후 새벽에 쾅쾅 노크한 연우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세상에 나와줬다. 이제 9개월, 본인을 테토남이라 주장하지만 누가 봐도 에겐남인 오빠와 달리 테토녀 느낌이 물씬 난다. 일정 탓, 체력 탓 긴 시간을 놀아주진 못해도 머리 위로 둥가둥가 해주면 오빠처럼 뽀얀 얼굴로 급방긋! 하는 게 참 귀엽다.
무엇보다도 출산 후 찾아온 위급 상황을 무사히 넘긴 것에 감사하다. 1프로도 안 되는 경우에 걸린 것이 무섭기도 억울하기도 했지만 정신줄을 놓지 않고 잘 견뎌냈다. 퇴원 후에도 별난 약 때문에 여러 가지로 고생이 많았지만 출산휴가 동안 주변의 배려 속에 노력을 다해 회복했다. 의사도 큰일 날 뻔했는데 잘 이겨내줬다고 칭찬해 줬다. 체력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아 방전이 잦지만 덕분에 힘을 줄 때 주고 뺄 때 빼는 법도 조금은 알게 됐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복직 후 부서도 바뀌었다. 3년 만이다. 사내외 정치 풍파 속 이 연차에 연고도 없는 곳에 떨어졌지만 다시 수습이 됐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듯, 팀원들을 내조하듯 하루하루 보냈더니 부장과 팀장도, 후배도 금방 적응했네-라고 얘기해 줬다. 근무지 내 성당과 절, 교회가 다 있어 퇴근길마다 내키는 곳에 들러 기도하고 명상하는 호사도 누린다. 그러던 사이 차장도 달았다. 그래봤자 나인에서 생각시 된 것이긴 하지만, 누락 없이 여기까지 온 데 감사하다.(만 상궁까지 달고 싶진 않은데) 사령장을 받고 같이 진급한 일부 동기와 사진을 찍었는데, 15년 전 면수습 후 찍었던 사진과는 포즈도 기운도 많이 달랐다. 우리 모두 각자 자리에서 고군분투해왔구나 싶었다.
돌이켜보니 자질구레한 것들도 꽤 했다. 15년 만에 본 첫 토익 결과는 충격적이었지만 하루 20분씩이나마 투자해서 두 달 만에 점수를 회복했다. 용기 내서 들어간 새로운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도 다양하고 흥미롭다. 맛집을 찾아다니고,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재능기부로 엑셀 강의를 듣고, 그냥 걷는다. 과일장수부터 퀀트까지 전혀 다른 일들을 하는데 신기하게 도움을 주고받을 때도 있다. 서울시에 오래 몸담았던 공무원, 선배 기자들과 함께 1년 간 포럼도 진행해 결실이 목전이다. 이름을 말하기조차 어려워진 고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작업이라 대담집이 무사히 세상에 나올 수 있을지 확신은 못하겠다. 그럼에도 지난 10여 년의 시정을 부문별로 되짚어본 과정 자체만으로 내게는 의미가 충분했다. 버킷리스트였던 신춘문예 응모도 했다. 이 역시 결과와 관계없이 나의 과정과 마음을 온전히 담아냈기에 만족스럽다. 동생을 엄청 예뻐하지만 내심 서운한 순간이 많았을 첫째와 단 둘이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도 큰 도전이었다. 출국부터 귀국까지 긴장했고 예상보다도 힘들었지만 쭈니가 대만족한 것 같으니 다행이다.
마흔 해를 살아냈더니 관계를 솎아내는 능력도 시나브로 생겨났다. 내게 필요한 인연과 그렇지 않은 인연을 스스로 구분하기도 하고, 종종 시간과 운명이 해결해주기도 한다. 어떤 인연은 숙성과 인내가, 어떤 인연은 정리와 단념이 필요한지 모른다. 양쪽 모두 용기와 연습이 요구되는 일이다. 어렵지만 내게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는 의지를 다져본다. 언제까지 답을 찾고 이룰 것인가 보다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을 건너갈 것인가에 방점을 두는 것도 좋겠다. 이 과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바로 서는 것이고, 그 기초공사를 올해 했다고 생각해 본다.
아첨꾼이자 자존감 부스터로 유명한 챗gpt, 나의 리즈는 내 을사년을 이렇게 정리해 줬다.
"리사야, 올해 네가 대단한 이유는 결과가 화려해서가 아니야. 무너지지 않은 채로 확장했다는 점이야. 넌 상황이 너를 흔들어도 네 삶을 계속 굴릴 수 있는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