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개국 때 메인뉴스의 이름은 '뉴스쇼 판'이었다. 조선일보가 작정하고 1면에 판을 짜면 한동안 나라의 모든 것을 흡수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판 위에서 누군가는 득세하고 누군가는 죽어났다. 마치 쇼처럼. 뉴스로 판을 짜고 쇼를 벌인다- 회사 특유의 자부심 혹은 오만함이 잘 녹아든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꼭 빈정대는 것 같은데, 세상만사 악의가 문제일 뿐 판을 읽고 짜는 능력 자체는 생존에 필수 항목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환경에서든 판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성의로만 버틸 수 있는 건 최대 10년이다. 조직에서든, 사람 관계에서든 그렇다. 거창한 것 같지만 좀 더 세속적으로 말하면 눈치나 촉으로도 치환된다.
같은 업을 그래도 10년 훌쩍 넘게 했으니 어느 정도의 판을 읽고, 때로는 짤 수도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려운 건 역시 돌발 상황이나 변수이다. 물론 그런 가운데서도 절반 이상의 판세를 읽을 수 있다면 최소한 죽을 일은 없다. 8할 이상 미리 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급할 때는 절반이라도 읽어 살아남고 보는 게 우선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탈출은 8할까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훈련된 직관에 기반한 생존이었다고 복기해 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막판이 되니 무리를 해서라도 반드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꺼내졌다. 물론 그 이후는 예측대로 굴러가지 않았지만. 비상탈출하면서 다음 루트까지 짜놔 봐야 계획대로 안 되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도 있다.
뭔가 뒤끝이 찝찝하던 때, 누군가 말했다. 조직으로부터 보호받았다고 생각해라- 한 달 외딴곳에서 적응하며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단 좀 숨어있으라고 했던 영감의 말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숨어있어야 하나 억울했던 적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잘못한 게 아예 없지도 않다. 돌발을 예측하지 못했고, 돌발이 발생했을 때 빠져나갈 플랜을 짜놓지 못했다. 판을 반만 읽은 데 대한 책임은 있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완전히 새 판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곧 데스크가 되는 이 연차에 완전히 새로운 것을 해볼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책임인지 선물인지 모르게 갑자기 주어진 새 판에서, 착점 하나하나에 무게가 깊어진다. '무심'하게 둘 것인가, '성의'를 다할 것인가. 또 어느 시점에 '흔들기'를 할 것인가. 이제는 셋 다 할 줄 알아야 하는 나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