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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노래

당신의 해 뜰 날

by 글쓰는 오데트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막내 삼촌의 결혼식날, 피로연 식당에서 할머니는 이 노래를 목청껏 부르셨다.

그때는 몰랐다. 할머니의 표정이 왜 기쁘면서도 슬퍼 보이는 걸까.

내가 아는 그녀는 점잖고 조용한 분이었는데, 그날만은 무대에 오른 트로트 가수 같았다.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나를 매우 예뻐하셨다. 사실 처음에는 맏며느리인 엄마가 딸을 낳아서 실망을 좀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낳고 보면 세상 이쁜 게 내 손주 아닐까. 더군다나 몇 년간 할머니댁에서 살았기 때문에 첫 손주인 나와 할머니의 정은 각별했다.




엄마는 시댁으로 들어와 미혼의 삼촌들과 시부모님 그리고 시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첫 신혼살림을 꾸렸다. 타고난 맏며느리감일까, 엄마는 얼른 아빠와 결혼해서 편찮으신 시할머니를 모셔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자연스럽게 할머니댁에서 크게 된 나는 첫 손주라는 메리트를 안고 온 가족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특히나 할머니는 나에게 아주 각별하셨는데, 또렷한 기억은 없지만 내가 많이 따르고 좋아했던 것 같다.

무릎에 앉아 동요도 배우고, 책도 읽고 , 손에 이끌려 할머니가 가는 곳은 어디든 함께 했다.

그 후 엄마가 식당을 하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외갓집으로 이사를 왔지만 할머니와의 기억은 아직도 즐겁고 따뜻한 느낌이다.



내가 국민학교 2학년쯤 되었을까? 할머니가 어느 날 암진단을 받으셨다. 그것도 50대라는 창창한 나이에…

우연히 팔수술을 하러 갔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하필 할머니의 언니를 데려간 병과 같았다. 예후가 안 좋다는 폐암.


키가 작고 하얀 피부의 할머니는 투병을 하면서 더 창백한 모습이었다. 통통했던 두 뺨과 야무졌던 입가엔 병마의 그늘이 졌다.

진단을 받았을 때는 이미 말기였던 모양인지 항암 치료보다는 요양을 택하셨고, 양산의 시골집으로 이사를 가셨다.



넉넉했던 친정에서 태어났지만 결혼 후 가난과 싸워야 했던 할머니.

그녀는 살림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사업수완과 언변이 좋고 글을 잘 쓰셨다고 한다.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김미경 선생님 같은 여성 리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죽음이 스며드는 절망 속에서도 노래처럼 당신 인생의 ‘해 뜰 날’을 기다렸던 걸까.



돌아가시기 몇 달 전, 할머니는 나를 불러 한번 안아보자며 무릎에 잠시 앉아보라고 했다.

어린 마음에 낯설게 느껴졌던 건지, 나는 그 앙상한 무릎에 앉았다가 금세 일어났다. 할머니는 서럽게 울부짖으며 나를 원망하셨다.

그 소리에 놀라 다른 방으로 숨어 버렸지만 느끼는 소리는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함께 한 시간만큼 더 섭섭하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야속해서였을까.




이제 할머니는 없지만 나는 내 인생의 해 뜰 날을 기다린다.

아직은 캄캄한 터널 안을 걷는 기분이지만 언젠가 나의 인생에도 ‘쨍하고 해가 뜰 날’이 오리라고 믿어보려 한다.


#별별챌린지#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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