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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오데트 Nov 16. 2023

치킨은 집밥이다.

그녀의 신박한 정의

"다들 비도 오는데 오늘 저녁은 뭘로 먹어?”

“울 집은 삼계탕 먹을 거임.”

“우리는 집에 있는 나물에 밥 비벼 먹어야지."


싱그럽던 스무 살, 대학에서 만나 이제 40대로 접어든 우리… 주름은 늘었지만 대화의 주제는 변한 게 없다.

아주 가끔 자녀들 얘기나 쇼핑 얘기를 하고, 주로 90프로는 먹는 이야기이다.




오죽하면 분기마다 모이는 계모임도 ‘그만 먹계’라고 이름 지었을까.

이름과 달리 계모임 날짜와 장소는 무엇을 먹을지에 따라 틀려진다. 특히 뷔페는 그녀들을 매우 설레게 하는 곳이다.

저녁에 뷔페를 가는 날은 점심을 건너뛰는 게 국룰.




대학에 다닐 때도 그랬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면 익숙한 글씨가 적힌 종이 한 장이 전달된다.


‘오늘 점심 뭐 먹을지 적어~아네모네 분식 갈 거야.'


메뉴를 미리 정하는 이유는  이리저리 고민할 시간에 빠르게 주문하기 위해서이다.

돈가스, 떡볶이, 라면 등등… 모두의 욕망을 충족시킬 어벤저스 메뉴가 완성되면 그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진다.


교수님이 수업을 끝내자마자 부리나케 강의실을 뛰쳐나간다. 우리의 목표를 향해 돌진.

밥 먹는 것만큼 강의를 열심히 들었더라면, 전액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을 텐데.




식욕 왕성한 청춘들에게 밥 먹고 후식 역시 빠질 수 없. 동아리방앞에 저렴한 자판기 커피는 우리의 인심을 후하게 만든다.

한잔에 200원, 주머니 속 동전에 동아리방에 굴러다니는 동전까지 끌어모아 주변에 온정을 베푼다.

사실 동아리방 앞 자판기 보다 도서관 건물의 자판기 커피가 더 맛있지만 말이다.

커피를 마시러 도서관 5층까지 등산을 하다 행여 살이라도 빠질까 봐 다들 게으름을 유지하기로 한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식신 친구들은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한다.

우리 중 리더 격인 친구가 말한다.


"나 오늘은 집밥 먹을 거야."

“오~ 뭐 해 먹을 건데?”

“비도 오고 하니깐 치킨 시켜서 치맥 하려고."

“치킨이 무슨 집밥이야?”

“집에서 먹으니까 집밥이지, 어제까지는 계속 외식했거든. 오늘은 소박하게 집밥 먹으려고."




역시 발상이 남다른 나의 친구들이다.

2인 가족인 친구 부부는 밀키트를 쟁여 놓거나 배달을 자주 시켜 먹는다.

그녀의 기준에 의하면 외식 빼고는 매일 집밥을 먹는 셈이다.


신박한 그녀의 정의에 경의를 표한다. 다음 모임 장소는 뷔페라고 하니 벌써부터 긴장이 된다.

그날은 다들  몇 접시를 탑처럼 쌓아 올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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