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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오데트 Nov 19. 2023

혹시 당신도 꿈을 찾고 있나요?(연재)

epi1. 매서웠던 타지살이

2007년 5월, 나는 경력을 쌓기 위해 수원에서 ‘열정페이’도 아닌 무급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했다.

말이 좋아 어시스턴트지 그냥 잡다한 준비를 하는 일이다. 대신 업무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니 여러 모로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무급인 관계로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열정 하나로 올라왔지만 재정적인 어려움과 좁은 고시원 생활이 꽤 힘들었나 보다.

좁고 관 같은 고시원 침대에 누워있으면 작은 창문 사이로 번화가의 온갖 소음이 들려왔다.


공용화장실에서 목욕을 할 때는 늘 신경이 곤두섰다. 혹시 모르는 남자라도 들어올까  조마조마 한 마음으로 대충 비누를 문질러댔다.

가끔은 옥상에 널어놓은 속옷을 도둑맞기도 했다.

저녁 식사는 매일 편의점 김밥으로 해결했는데, 어느 날 굳어버린 김밥을 질겅질겅 씹다 창문밖을 보게 되었다.

화려하게 옷을 입은 사람들, 들뜨고 걱정없는 표정




‘나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걸까.’


보험료를 내지 못해 독촉문자가 날아오고, 어느 날은 속 깊은 친구가 돈은 좀 있냐며  말도 안 한 30만 원을 빌려줬다.

20대의 뜨거움과 무모함으로 무작정 올라왔던 나에게 매일 같은 질문을 했다.


‘이게 맞는 걸까.’


내가 이렇게 돈을 모으지도 못하고 몸으로 부딪히는 사이, 친구들은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아파트도 샀다고 했다.




그 후 몇 개월을 버틴 끝에 정규직이 되었지만 3년간 초보 딱지를 떼느라 심한 성장통을 겪었다.

손이 느리고 일머리 없는 초보에게 세상은 생각보다 더 가혹했다.

선임들의 말이 내 맘을 깊숙이 헤집어놓기도 하고 밤새 술을 마시며 울기도 했다. 틈틈이 이를 갈며 공부도 했다.




어느 날 회식에서 평소 친분이 있던 선배가 나에게 말했다.


“너  00 때문에 많이 힘들지.?”

“네… 좀 그래요.”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냐? 너도 나중에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 거야."


그 말을 가슴깊이 새기며 더딘 세월을 견뎠다. 일이 많아 퇴근이 늦어지는 날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니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부산지사로 발령을 내어준다는 것이다.

발목을 붙잡고 절대 놓아줄 것 같지 않던 최고 선임이 먼저 제안을 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부산으로 오면 나의 미래는 해피엔딩 꽃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굴러 들어온 돌이 자리 잡는 과정이 그리 순탄한 할 리 없다.

인정받고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데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고향으로 와서 좋은 사람들과 일을 했지만 나에게도 오춘기가 찾아왔다.


'이렇게 기계처럼 숨도 못 쉬고 일하는 것이 맞는 걸까…‘

‘이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일까.’


일 년 넘게 번아웃과 슬럼프로 힘들어하다 가슴속에 무언가 올라왔다.


'더 늦게 전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어.'





그 길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사를 앞둔 1달 동안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늘 영어에 대한 갈망이 있었으니까 일단 어학연수를 가자.’


결정이 빠르니 일의 진행도 일사천리였다.

그 길로 필리핀 단기 어학연수를 신청하고 영어학원도 알아보았다. 나의 급박했던 외도는 어학연수 후에도 이어졌다.

어학연수가 끝나자마자 남은 퇴직금을 털어  다시 서울로 갔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며 '진짜 내가 원하는 나의 '을 찾기 위해서였다.

(내일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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