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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오데트 Nov 24. 2023

나는 결심을 할 때마다 라면을 먹어

나의 결심푸드

뒤척이다 눈을 뜹니다.

시계를 보니 작은 바늘이 2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직 어두운 걸 보니 새벽 2시가 맞는 것 같네요.

잠귀 어두운 남편이긴 하지만 조심히 몸을 일으킵니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신 후 거실 한편 소파에 털썩 앉았습니다.

이번달 생활비를 정리해 본 후 나의 생각들도 마저 정리를 합니다.




방황은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이젠 어찌 되었든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자기 연민에 빠져 불행을 곱씹는 행위는 이제 멈추기로.

오늘부터는 체중 관리도 다시, 맥주는 주말로 미루기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요가와 독서로 시작하는 아침루틴은 깔끔하게 다음 주부터 시작하기로 나와 합의를 해봅니다.




혹시 결심푸드라고 아시나요?

당연히 모를 겁니다. 제가 방금 만들어낸 단어니까요. ^^

드라마에서 보면 몰아치던 전개를 바꾸는 전환점이 있습니다. 주로 특정 인물의 출현, 물건, 유전자 검사 같은 장치들에 의해서지요.

저에게도 그런 전환점을 만드는 음식이 있습니다.




결심을 할 때마다 먹는 음식이라 '결심 푸드'라고 마음대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알아차리지 못했었는데 심경의 변화가 생길 때마다 최애 음식을 찾게 되더군요.

저에게는 그게 '라면'입니다.

남들에게는 반찬이 없을 때 또는 밥 하기 귀찮을 때 먹는 음식일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 라면은,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금지된 사랑입니다.




한번 먹으면 국물까지 싹 다 흡입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증량과 붓기가 무서워 가끔 남편 라면에 한 입만 거들고 있지요.

주체적으로 라면을 끓여 먹는 일은  잘 없습니다.

찾아보면 라면 보다 더 살을 푹푹 찌우는 음식들도 많은데 말이지요.




결심을 핑계로 라면을 끓일 때면 묘한 긴장감마저 들기도 합니다. 양심은 있는지 주로 밤이 아닌 새벽에  끓여 먹습니다.

오늘도 도둑고양이처럼 주방으로 와서 냄비에 조용히 물을 부었습니다. 요리똥손인 관계로 라면물도 계량컵을 이용합니다.

보글보글 라면이 끓어가자 내 마음도 조급해집니다. 젓가락으로 구불구불한 면을 들었다 놨다, 탱탱한 면발을 위해 분식집 아주머니 흉내를 내어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조심스레 식탁에 셋팅한후 시댁에서 보내주신 쿰쿰한 갓김치를 꺼냅니다.

새벽라면의 장점은 온전히 음식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깨어있으면 이리저리 나의 라면을 내어줘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두가 잠자는 새벽이라, 한 올 한 올 쫄깃한 면발을 느끼며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계란부터 한입 베어 물고 후루룩 뜨끈한 국물을 마십니다. Tv에서 보니 백종원 선생님도 향부터 맡은 후 이렇게 국물부터 마시더군요.

어디서 본건 있어서 미식가 흉내를 내며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웠습니다.




결심을 해서 먹는 건지, 결심을 핑계로 라면이 먹고 싶은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제해 왔던 라면을 먹고 나면 뱃속뿐 아니라 영혼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입니다.

언젠가 일본여행을 가게 된다면 일본식 라면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먹고 나서 얘기할 것 같습니다.

역시 라면은 칼칼한 우리나라 봉지라면이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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