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치는 할머니로 늙고 싶어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기분 느껴본 적이 있나요?
잊고 있었는데, 한 번씩 마음 한구석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있습니다.
나에게는 그게 음악입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좋아했던 음악을 잊고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노래하는 게 좋아서, 음악이 좋아서 합창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지요.
음악시간에 배운 동요를 하루종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사실 주일학교에서 노래 선창이나 반주를 하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저에게 미사 해설을 해볼 생각이 있냐고 하더군요.
그렇게 몇 년을 음악과 멀어져 지내다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노래를 하는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지요.
일부러 가입한 게 아니고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동아리방을 지나는데 선한 인상의 남자선배가 기타를 치고 있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신입생들을 붙잡기 위한 컨셉이었나 싶기도 합니다.
포멀한 찢어진 청바지에 아이보리색 니트를 입은 선배는 어쿠스틱 기타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 선한 눈으로 대학생활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는데, 동아리방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기타들이 보이더군요.
이 동아리방에서 기타를 배우며 노래를 함께 부르면 참 멋진 대학생활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게다가 동아리방 책장에 자리 잡은 두꺼운 전공서적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책 값 굳겠다.’
여러모로 매력적이었던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나의 음악 dna는 다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노래 연습하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좋아하는 걸 하면 거기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군요. 그때 처음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건 아니라는 생각에 그 끝을 붙잡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졸업 후에는 성당에서 생활성가 성가대를 하며 음악에 대한 미련을 이어갔었죠.
성가대 활동을 하며 노래와 기타 레슨도 받았습니다.
참, 그리고 보니 피아노 반주 레슨도 두세 달 받았네요. 다만 완성을 하지 못했습니다. 코드 반주를 쉽게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더군요.
일단 피아노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아 조표가 붙으면 버벅거리고, 코드는 코드대로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자연스러운 반주를 하려면 자리바꿈이라는 걸 해야 하는 데 그게 생각보다 참 쉽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연습량도 받쳐주지 않으니 실력이 늘지 않고 결국 포기를 반복하다 고이 접어두었습니다.
언젠가 여유라는 게 생기면 펴보자 하고요. 음악은 워킹맘에 어린 자녀가 있는 나에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일상이 참 건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와 책이 있기는 하지만요.
배부른 무료함이 아니었습니다. 허기진 공허함 같은 거였죠.
‘해야 할 것들’에 의해 빈틈없이 돌아가는 일상이 참 숨 막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 중에 내가 온전히 기대어 휴식할 무엇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점점 음주와 유튜브 검색 등 빠른 도파민 분비를 유도하는 것들에만 집착하게 되더군요.
그렇게 지쳐갈 때쯤 음악을 다시 만났습니다.
성당에서 오르간 반주 꿈나무를 뽑는다는 소식이었고 시간만 허락된다면 무척이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반주봉사를 해야 되는 시간이 직장에 가 있거나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시간과 겹치는 것 같아 지원을 망설였습니다.
그렇게 서성거리던 어느 날 성가대의 노래 한곡을 듣게 되었는데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제목은 '힘을 받아라'라는 곡이었죠.
잔잔한 아르페지오 기타 연주 그리고 청아한 여자 목소리에 굵은 남자의 저음이 합쳐진 화음…
화음을 켜켜이 쌓는다는 게 이렇게 아름다운지, 사람의 목소리가 최고의 악기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데 내가 잊고 있었구나.’
이제는 해야 할 것,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존재로 관계를 이어가 보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씩 집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친해져야겠지요.
나의 머리가 은발이 되고 손에 주름이 자글거릴 때 내 옆에 여전히 기타가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피아노와 노래가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 음악과 함께 하는 삶, 노래하는 삶,
선율 위에 삶을 꿈꾸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