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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오데트 Jun 24. 2024

엄마, 왜 우리는 여행을 안 가?

폭우를 뚫고 번개여행을 간 사연

“어머, 00 엄마 오랜만이에요.”

“엄마, 00는 오늘 여행 간데.”

“아 그렇군요, 하필 비가 와서 어떡해요?”


호우주의보가 뜬 날씨에 여행이라니, 하지만 00 엄마의 표정은 제법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인사 후 아이손을 잡고 미술학원을 나서는데 갑자기 아이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00는 오늘 스위스로 여행 간데.”

“스위스?..”

‘아.. 그래서 날씨 걱정을 안 했던 거네.'

“엄마, 왜 우리는 여행을 안 가? 반 친구들 다 해외여행도 가고 캠핑도 다닌단 말이야. 우리 반에서 나 빼고 다 갔어.”




순간 아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돈관리를 못해서, 금전적 여유가 없어 여행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일까.

00은 알고 보니 스위스가 아니라 베트남 여행이었지만, 요즘은 다들 일본, 동남아, 제주도 등등 가족끼리 여행을 많이 다니는 추세이다.


반 친구들 다들 여행을 다니는데, 우리 아이가 소히 말하는 그 개근@@로 놀림받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개근을 하는데 왜 거지로 놀림받아야 하는 걸까.

아이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부모의 경제력으로 수직구조가 형성이 된 건 아닌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 당장 여행을 가고 싶다고 서럽게 우는 아이에게 화를 내지 못한 건, 어쩌면 아이의 속상한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베트남으로 가자는 아이에게 설명을 한 후 가까운 바닷가 펜션을 잡기로 합의를 보았다.

하필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씨에 여행이라니, 정말 내키지 않는 일정이다.


입이 댓 발 튀어나온 남편을 부추겨 급하게 짐을 싼 후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역에 도착을 했다.

철없는 아이는 짧은 머리가 비에 홀딱 젖었는데도, 실실 웃으며 좋다고 깡총깡총.

우산은 다 뒤집어지고, 비를 잔뜩 맞으며 세 식구가 빗속을 걸었다. 다시 생각해도 뭐 하는 짓인가 헛웃음과 후회가 밀려올 때쯤 드디어 해운대 전통시장에 도착.

유명하다는 분식집에서 아이가 먹을 음식을 산 후, 근처 횟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장님, 죄송한데 아이가 아직 회를 못 먹어서요. 애한테 사온 분식을 좀 먹여도 될까요?”


흔쾌히 허락해 주신 사장님 덕분에 아이는 분식을 먹고, 남편과 나는 차가운 소주를 기울이며 통통한 회를 한점 입에 넣었다.


“오늘 친구 00가 여행을 간데. 반애들은 다 해외여행도 가고 이리저리 다니는데 자기만 못 가서 너무 속상했나봐.




남편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내린 결론은 결국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

캠핑을 다니려고 해도 큰 차가 필요하고, 해외여행은 말할 것도 없다.

돈이 없이 억지로 가는 여행은 얼마나 쪼들리고 재미없는 일정이 될 것인가.


횟집을 나와 인근 마트에서 야식거리를 샀다. 택시를 타고 숙소에 가자마자 아이가 소리를 지른다.


“와, 너무 좋아."


하얀색 침구에 강아지처럼 얼굴을 비비고  뒹구는  여덟 살 아들.


'네가 벌써 여행을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돼지국밥집도 뷰를 찾으니 말 다했지.'


왜 여행이 가고 싶냐고 하니 바다를 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서라고 한다.



고정지출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사실 카드 할부만 줄여도 조금 더 여유가 있을 텐데.

보험을 좀 정리해 볼까.

네이버프리미엄 구독도 좀 고.

생각해 보니 새는 구멍이 참 많다.


그리고 번뜩하고 떠오른 건 블로그 체험단 신청과 부수입 만들기.

다시 열심히 블로그를 해야 되나 생각이 들었다. 단돈 백 원이라도 블로그로 돈을 벌어온다면 가족들이 인정을 좀 해줄 텐데.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자식을 위해서는 조금 더 몸을 움직여야 한다.




다음날 아침, 창가 너머 바다에 환호성을 지르 아들을 보니 내 결심이 더 단단해졌다.

돼지국밥을 먹고, 풍선 터뜨리기를 하고, 탕후루를 먹고 … 우리는 해외여행 못지않는 호사를 누린 후 집으로 돌아왔다.


"즉흥여행이라 더 재미있었지? 엄마가 돈 열심히 모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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