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옹진
옹진군의 광역시도 행정구역은 인천광역시에 속한다. 해방 이전에는 황해도 옹진군이었으나 북위 38°선으로 국토가 분단되면서 38선 이남의 옹진군과 장연군 백령면, 벽성군 송림면 등이 경기도로 편입되었다. 한국전쟁 후 육지인 옹진반도를 잃고 백령면과 송림면 연평리(도)만 남아있었으나 1973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기만灣 일대 섬들을 편입하고 1995년에 인천광역시에 속하게 되었다.
*영흥도 가는 길에서 만나는 곳
- 시화방조제와 조력발전소 & 대부도
옹진군에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섬이 있다. 바로 영흥도(면)로 섬은 안산을 거처 시화방조제를 지나 대부도, 선재도를 통해 들어간다. 대부도는 북동으로 시화방조제로, 남으로는 선감도, 탄도를 지나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와 탄도방조제 도로로 연결되어 육지에 닿는다. 오전 10시경 출발하여 70여 분이면 도착한다. 영동고속도로 월곶 나들목에서 오이도. 시화방조제 방향으로 달리면 시화방조제다. 왕복 2~4차선 도로가 거의 직선으로 시원한데 우측은 서해바다, 좌측은 시화호가 펼쳐져서 더욱 멋진 조망을 보여준다. 어느 때는 좌우측의 색감이 대조적인 질감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서해바다는 알다시피 물이 조금 탁하고 또한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하여 썰물 때는 넓은 갯벌이 펼쳐지곤 하는데 우측 시화호는 반담수호로 늘 푸른색이다.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것을 조력 발전이라 하는데 우리나라 유일의 조력발전소가 이곳에 있다. 조력발전소에는 소공원과 휴게소가 자리잡고 있어 관광객에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 방아머리와 선재도 지명유래
방조제 끝에는 방아머리라는 지명이 있다. 지금은 관광지 조성이 한창인 듯하나 길 양옆으로는 해물 칼국수 집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방아머리 지명의 유래는 '구봉염전 쪽에 있는 서의산으로부터 바다로 길게 뻗어 나간 끝 지점으로 디딜방아의 방아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문으로 방아찧을 ‘용(舂)’자를 써서 용두포(舂頭浦)로 표기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여기를 지나 20 여분 가면 선재도에 들어선다. 우리나라 전형적인 시골 풍경에 다시 바다가 보이는데 이날은 썰물 때였는지 갯벌이 넓다. 선재도의 선재仙才는 주위의 경관이 아름답고 수려하여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던 곳이라 하여 선재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국토지리정보원, 2009)
선재도를 지나 영흥대교를 만난다.
* 영흥도의 인문지리
영흥도는 역사적으로 원래 이름은 '연흥도(延興島)'였으나 고려 말 나라가 망할 것을 예측한 왕족 익령군(翼靈君) 왕기(王琦)가 이곳에 왔는데, 그의 군호인 영(靈)자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다시 흥했다는 의미의 흥(興)를 붙여 영흥(靈興)이 되었다고 전해 오지만 이는 지명 이후의 사실이다. [인천광역시 홈페이지]
선재도와 영흥도를 연결하는 영흥대교는 왕복 2차선 사장교 교량이다.
드디어 영흥도다, 입구에는 작은 포구가 있고 어패류와 이를 판매하는 상점들이 있으며 관광지답게 편의시설과 펜션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왼쪽 해안도로를 따라 15분 정도 가면 섬 서쪽 끝에 노가리 해변이 나온다.
- 노가리 해변 도서관 & 해식동굴
썰물 때 해변 따라 몽돌 밟고 가면 바다 침식에 의한 기암들이 나타난다. 마치 책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듯한 해안 절구는 부안의 채석강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나 규모는 그 10%도 안 되는 듯, 하지만 수도권에서 가볍게 여행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해안절리는 황갈색이 주를 이룬다. 무질서한 듯 질서 정연하게 쌓인 책을 꺼내 보면 지구생성 역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바다에 있는 바위들은 해수의 영향으로 검은 갯벌 색을 띠고 있고 좀 더 강해 보인다. 서쪽으로는 긴 갯벌과 까마득히 바다가 수평선까지 펼쳐져 있다. 주말이라 낚시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찾아든다. 나도 한번 강태공처럼 낚싯줄 드리우고 세월을 낚아 보는 여유를 갖고 싶기도 하다. 길은 좁고 주차공간이 없어 접근성은 상당히 떨어진다. 이런 환경 때문에 개발이 안 되고 덜 알려진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이곳에서 10분 정도 북으로 가면 남동발전단지 지나 장경리에 도착한다.
- 장경리 해수욕장
아담한 해수욕장으로 첫인상이 모래가 곱고 깨끗함이 마음이 끌린다. 백사장이 있고 이어서 자갈들이 바다 방향으로 길게 펼쳐져 있다. 작은 몽돌로 바닷물이 갯벌 해변에 비하여 맑다. 모래는 상당히 고와 아기 피부같은 느낌이다. 백사장 폭도 20여 미터를 넘는 듯하여 전체 느낌은 '시원하다'. 단 성수기에는 주차 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는 환경이다. 이날도 주차공간 찾는데 시간을 허비했다. 해변에는 송림이 길게 숲을 이루고 그 숲에 캠핑장이 줄지어 있어 가족과 친구, 연인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접근성은 2차선 외길이라 성수기에는 좋은 편이 아닐 듯 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점심을 해결해야 하기에 찾은 곳이 해변에서 5백여 미터 떨어진 짬뽕순두부집이다. 한•중식을 아우르는데 나름 괜찮았다. 문을 연지 오래되지 않은 듯 내부도 깨끗하고 사장님도 친절하다.
- 십리포해수욕장과 서어나무(소사나무)군락지
일정의 마지막 목적지인 십리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장경리서 꼬불꼬불 섬 도로를 따라 20여 분 남짓 가면 '서어나무(소사나무)' 군락지가 반긴다. 장경리 해변은 해송이 있고 십리포는 서어나무 군락지가 해변을 따라 방풍림처럼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이 나무들은 보호수로 관리받고 있다. 서어나무(소사나무)는 한국과 일본에서 자생하는 자작나무과의 나무. 극상림을 지배하는 나무로서, 한국의 숲을 수 백년 동안 가만히 놔둔다면, 결국 서어나무가 한반도를 뒤덮게 된다. 그래서 "숲의 지배자"라고 불리기도 한다.(출처: 나무위키) 서어나무는 참나무목, 자작나무과, 서어나무속으로 학명은 Carpinus laxiflora, 꽃말은 재물이다. 참고로 서어나무 군락지는 약150여년 전에 주민들이 식재한 인공림이며 2007년 산림청으로부터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받기도 했다. 이곳은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 전초기지라는 표지석도 보이는데 격동기의 중요한 지리적 위치에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잊지는 말자. 아버님께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신 분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복무지가 옹진쪽이라 하셨다. 그해 6월 25일 모두 휴가 나온 것도 사실이고, 전쟁으로 동료 전우들 모두를 먼저 하늘로 보내셨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멀리 송도와 영종도 인천공항 그리고 인천항이 보이는 곳이다. 지금이야 송도 국제도시의 마천루와 하늘에는 여객기가 쉬임없이 인천공항을 들락거리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지만, 전쟁 당시 여기도 수많은 사연과 아픈 상처가 묻혀있을 것이다. 시간은 지나가지만 역사는 쌓이는 것이니까. 백사장은 장경리 해변보다 색감은 약간 검은 빛을 띠고 있다. 아마도 갯벌이 해변에서 가까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해 본다. 주변에 해식성 바위들도 검은 빛이많다. 해변의 동쪽 끝에는 바위 밭이고 해안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멀리 시화방조제가 보인다. 주변에는 주차장이 잘 갖춰져 있고 팬션과 편의점 등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여름이 지났건만 아직 야외풀장에는 개구쟁이들이 놀고 있다.
* 무위자연 영흥, 그 들리지 않는 소리
이 순간 이 시간은 번잡하지 않은 한적하고 고즈넉한 해변이지만 동해처럼 파도 소리는 듣기 힘들어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루라는 시간을 내어 돌아본 영흥도의 아름다운 자연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노자에 '세상은 들리지 않는 언어로 말을 건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나는 과연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자연의 언어를 느끼기나 했을까? 노자는 이어서 '눈앞에 일어나는 일에 휘둘리지 마라. 그 현상이 이야기하는 들리지 않는 언어를 감지하라.'한다. 이 말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며 영흥도의 자연을 담아보고, 세상과 자연이 우리에게 전하는 들리지 않는, 또 다른 이야기에 감응하고 싶다.
채석강을 연상케하는 노가리 해변
장경리 해변
십리포 해변, 바다 건너 인천대교가 보인다.
십리포해변..
서어나무(소사나무) 군락지. 방풍림 목적으로 식재하였다는 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