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2004년 7월 장마철 어느 날 나는 터벅터벅 무거운 발을 떼며 첫 Night 근무를 하기 위해 병원을 향했다. 입사 후 첫 밤 근무였다. 아무도 없는 병원 로비는 으스스했다.
띵동! 5층입니다. 병동 엘리베이터가 열렸지만 쇠 철장 사이로 보이는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화장실 방향으로 시끌시끌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 보호사님 문 열여 주세요” 라고 외치는 나의 목소리보다
" 안 나와~ 못 나가~ 차라리 날 죽여 이걸 꺼내야 내가 살아 지금 나가면 나 진짜 죽어~그냥 나를~" 익숙한 그녀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하.... 오늘 근무가 평탄치는 않겠구나. 깊은 한숨과 함께 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수인계도 하기 전에 나는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러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제일 끝에 고정석 4번째 화장실 안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쭈그리고 앉아 본인의 손가락으로 figer enema(수지 관장)를 하고 있었다.
150cm 작은 키에 체중 30kg인 그녀의 나이 52세다. 본인의 기억은 초고도 비만 환자인 20대로 멈추어 있었다 20살 대학생 때 초고도 비만 환자로 위 절제술과 지방흡입술, 단식 등 수많은 다이어트를 했던 환자였다. 이후 50키로까지 살을 뺐지만 살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강박으로 음식을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배에 똥이 가득 찼있어 화장실에 가서 수지 관장을 하루에도 수차례 하는 강박과 망상이 있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심지어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기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아침, 점심, 저녁으로 두 손모아 하늘을 향해 비는 행동을 하여 학교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과 물까지도 죄라고 생각하여 짧게는 1주일 길면 1달까지도 마스크를 쓴 채로 먹지 않고 누워있거나 기도만 하는 등 일상생활을 거의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함께 거주하고 있는 노모 혼자서는 해결할 방안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딸이 지내가다는 송장이 돼버릴꺼 같아서 가족들의 권유로 입원하게 되었다. 그녀 집에 있는 전신거울에 비친 모습은 현재의 모습이 아닌 32년 전 초고도 비만 환자 라는 모습에 멈춰 있었던 것이다.
입원 후에도 집에서와 같은 밥과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3일 정도 식사를 잘하고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거울 속에 내가 32년 전이 되는 그날이면 어김없이 단식투쟁과 구토 그리고 화장실에서 관장하느라 나오지 않았다. 주치의는 생명의 위협을 주는 이러한 행동으로 PRN 처방 3일 이상 굶거나, 체중 30킬로 이하로 빠졌을 때 개인 방에서 관찰 및 수액 투여 그리고 화장실 관장 행동이 계속될 경우 강박 order까지를 주셨다.
나는 인수인계를 마친 후 보호사님 두 분과 화장실 손잡이를 놓지 않고 버티는 환자를 번쩍 안아 병실로 안전하게 복귀 시켰다. 차트를 살펴보니 하루 종일 물 한모금도 식사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이 2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렇게 나의 험란한 첫 나이트의 근무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거의 일을 다 마무리하고 기지개를 폈던 새벽 2시. 모두들 고요히 잠든 시간이였다.
정적을 깨는 "간호사님, 여기 좀 들어가 보세요" 보호사님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화장실 변기에는 빨간 피로 얼룩져 있었다. 변기의 주인공은 그녀였다. 하지만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그녀는 "드디어 나왔어요, 저 이제 밥을 먹어도 될 것 같아요" 하며 나를 보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어이가 없었지만 안도의 한숨과 함께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녀와 뒤처리를 하고 함께 손을 잡고 나왔다.
내가 먹으려고 싸왔던 야식을 꺼내 병원 로비 테이블에서 그녀와 함께 겸상을 하게 되었다. 밥을 먹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우리나라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통통에서 마른 체형을 선호하게 되고 빠르게 변화되는 미의 기준으로 무분별한 다이어트들을 시도하는 청소년부터 장년층까지 무엇이 이렇게 변화하게 했는지 안타깝다는 생각하면서 이렇게 나의 첫 나이트는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