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머컬처의 탄생

빌 몰리슨과 데이비드 홈그렌

by 임경수

빌 몰리슨(Bill Mollison)은 1928년에 호주 남부의 작은 섬, 태스메니아에서 태어나 2016년에 작고했다. 그는 15세에 학교를 떠나 어부, 벌목꾼, 공장노동자, 상인, 기술자, 작가, 교사, 생물학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는데 이러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연 세계의 복잡성과 인간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청년기에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와 태스매니아 박물관에서의 일한 경험이 퍼머컬처를 구상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그는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생태계가 보전되어 있던 고향, 태스매니아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황폐해지고 주민은 더 가난해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자연생태계만큼 안정적인 경작생태계 혹은 인공생태계를 만들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다는 상상하게 되었다. 더불어 농업의 산업적 발전이 오히려 농업생산력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선 생태적이고 안정적인 경작 시스템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1974년, 태스매니아 대학의 생물심리학 교수로 있을 때 그의 제자인 데이비드 홈그랜(David Holmgren)을 만나 퍼머컬처와 관련된 공동연구를 시작해 1978년 홈그랜과 「PERMACULTUE ONE」을 출간하고 1979년에 퍼머컬처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1980년, 최초의 퍼머컬처 디자인 코스를 개설해 전 세계에 퍼머컬처를 알리고 수많은 퍼머컬처디자이너를 교육했다. 1981년, 퍼머컬처와 관련한 공로로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에 대해 실용적이고 모범적인 해답을 실천한 사람들을 기리고 지원하기 위한 국제적인 상인 ‘Right Livelihood Award’를 수상했다. 그의 별명은 Global Gardener(지구의 정원사)이다.

빌 몰리슨이 한국을 방문했었다. 빌 몰리슨이 퍼머컬처를 구상하기 전에 한국을 방문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990년말 정농회의 초청으로 층남 홍성의 풀무학교에서 강연하고 농민들과 교류한 자료가 「생태농업을 위한 길잡이」 (2000, 전국귀농운동본부)에 수록되어 있다. 충남 홍성의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 교장 홍순명 선생은 학교를 방문한 다른 서양인과 달랐다고 회고했다. 보통은 익숙하지 않은 논을 보면 ‘이 논에서 쌀을 얼마나 생산하나요?’, ‘이 논에서 쌀로 버는 돈이 얼마인가요?’ 등의 질문을 하는데 빌 몰리슨은 ‘이 논은 언제부터 논으로 경작했나요?’를 물었다 한다.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지속성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 때에도 논이었고 할아버지 때에도 논이었으니 몇백 년 아니 천년이 넘었을지 모른다’라는 농부의 답을 듣고 빌 몰리슨은 놀라워했다고 한다. 퍼머컬처의 개념을 만들 때 동아시아의 농법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말은 허튼 말이 아니었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를 졸업하고 충남대학교에서 산림학을 공부하는 한 대학생이 2000년대 초반 퍼머컬처를 배우고 싶어 태스매니아를 찾아가 빌 몰리슨을 만났다고 한다. ‘어디서 왔나요 ?’, ‘한국에서 왔습니다’, ‘왜 여기에 왔는지요 ?’, ‘퍼머컬처를 배우러 왔습니다’, 여기까지 대화를 한 빌 몰리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퍼머컬처를 한국에서 배웠는데 당신은 퍼머컬처를 배우려고 한국에서부터 왔군요’, 호주에서 독창적으로 만들었든, 한국에서 배웠든 중요한 것은 그걸 밝히는 게 아닐 것이다. 빌 몰리슨은 아메리카의 인디언, 호주의 애버리지니(Aborigine), 아프리카의 이름도 없는 부족, 한반도의 한 지역의 촌노가 그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던 소중한 지혜에 주목했고 발로 뛰며 발굴하고 엮어내 그 지혜가 퍼머컬처의 바탕이 되었다. 빌 몰리슨은 통시적 통찰력을 가진 선지자였다.

데이비드 홈그랜은 1955년에 호주 서부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호주 전역을 여행한 후 태즈메니아 대학의 환경디자인학과에서 공부할 때 빌 몰리슨을 만난다. 빌과 데이비드는 같은 집에 살면서 퍼머컬처와 관련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퍼머컬처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후 데이비드 홈그랜은 교욱보다는 퍼머컬처를 실현하는 것에 집중해 1983년 홈그랜 디자인 서비스라는 컨설팅 회사를 만들고 커먼그라운드 협동조합, 세레스 환경공원, 밀포스트 팜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곳들은 지금도 퍼머컬처 디자인의 우수한 사례로 여겨지고 있으며 방문자들에게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홈그랜은 퍼머컬처 디자인 원칙의 정립에 기여했으며 그의 저서 「Permaculture, Principle and Pathways Beyond Sustainability」는 퍼머컬처의 철학과 원칙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역작이다. 그는 호주 빅토리아주의 햅번 스프링스(Hepburn Springs)에 있는 멜링오도어(Melliodore)에 퍼머컬처 실현지를 만들고 이곳에서 교육하고 있다.

빌과데이비드.png

빌 몰리슨과 데이비드 홈그랜은 퍼머컬처를 실현하는 전략과 우선순위에서 작은 이견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빌 몰리슨은 퍼머컬처를 알리고 교육하는 것에 중심을 두었고 데이비드 홈그랜은 원칙과 철학을 깊게 연구하고 실천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또한 퍼머컬처 교육에 있어 빌 몰리슨은 근본적이었으나 데이비드 홈그랜은 다양성을 존중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관계와 상관없이 퍼머컬처와 관련한 두 사람은 다양한 저술, 교육에 대한 헌신, 직접적인 실험을 통해 지속가능한 생활방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현실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였고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확산시켜 많은 사람이 이에 공감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존재는 인류에게 큰 선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퍼머컬처를 소개하니 생소한 영어를 우리말로 바꾸어야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의견이 없지 않았다. 영속농업, 지속문화 등으로 번역한 글을 보았으나 퍼머컬처가 가진 개념과 철학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했다. 한때 ‘누리살이’라는 말을 만들어 써보기도 했으나 여전히 부족했다. 그래서 퍼머컬처라는 말은 빌 몰리슨과 데이비드 홈그렌의 통찰력과 창발성이 담긴 고유명사라고 생각해 우리말로 바꾸지 않고 쓰고 있다. 그래서 영어로 쓸 때는 일반명사 ‘permaculture’가 아니라 고유명사 ‘Permaculture’로 쓴다. 이는 퍼머컬처 창시자인 두 사람에 대한 헌정의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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