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아니란 걸 알아도
'교양 일본어'라는 대학 강의를 통해 처음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제일 먼저 해야 했던 것은 히라가나 외우기였다. 일본어 초보자를 위한 교과서에서 히라가나의 '우'단 중 む(mu)의 예시로 벌레를 뜻하는 むし(musi)라는 단어가 있었는데, 나는 에에~ 벌레가 존나게 무시무시데수네~ 하면서 히라가나와 그 단어를 함께 외웠다. 시험지를 교수님이 눈 앞에서 찢어발겨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처참한 일본어 수준으로 학기를 마무리했으나 그 벌레라는 단어만큼은 좀처럼 잊히지가 않는다. 10년 전 중고등학교 앞에서 나눠주던 공짜 공책에 persevere (인내하며 계속하다)라는 단어를 팔 굽혀 펴기 하는 남자가 팔십..일(81)! 으으으..펄 십 이 여(persevere)! 하는 개 병신 같은 그림으로 소개되어 있던 단어 외우기 방법과 유사한 말장난 때문에 벌레의 일본어가 잊히지 않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 벌레를 많이 무시무시,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나는 벌레를 무서워한다. 벌레들이 주변에서 사사삭 거리며 기어 다니는 것이 눈에 띄기만 해도 몸이 부르르 떨리며 저절로 얼굴이 구겨진다. 한동안 크기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도 말도 안되게 큰 사이즈의 벌레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왁씨발! 하고 욕짓거리가 튀어나오긴 하는데, 가면 갈수록 벌레에 대한 예민함이 커지다 보니 큰 벌레들 뿐 아니라 비교적 작은 벌레들을 보게 될 때에도 에스컬레이터 앞사람이 북 하고 뀐 방구 사이에 강제로 얼굴을 밀어 넣게 될 때의 그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욕설을 내뱉는다. 싱가폴 난양공대 기숙사의 공용 샤워실에서 성인 손가락 두 개만 한 크기의 바퀴벌레가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하고 있는 나에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으흥흥흥 응? 끼야야아아악이쒸발!!' 하고 샤워실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을 때나 (샤워실에 혼자 있었지만 혹시나 누가 들었을까 바로 폰으로 유튜브에 중국 노래 검색해서 틀어놓고 중국인 유학생인 척했던 초 병신 같은 실화) 탕비실 정수기를 작은 바퀴벌레 새끼가 뽈뽈뽈 기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는 메두사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한 것 마냥 그 자리에서 굳어 막 뜨거운 물을 부은 컵라면을 들고 '아 넌 또 왜 나한테 지랄인데. 제발 네 친구가 여기 들어가진 않았다고 말해줘 제발.' 라며 필요 이상으로 오바를 떨 때나 몸을 부르르 떨며 무서워하는 것은 늘 똑같았다.
벌레 크기의 문제가 아니면 당연히 그 꿈틀꿈틀 거리는 몸통과 몇 개인지 수를 세보고 싶지조차 않은 바들거리는 다리들, 좆같은 더듬이! 즉 외형이 문제겠거니 생각한 적도 있으나 문득 떠오르는 '그럼 개미도 무서워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또 막상 할 말이 없다. 확실히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내 다리 위를 기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게거품 물고 기절 직전에 이를 것 같은데 개미 한 마리라면 여유롭게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흥얼거리다 탁! 하고 손가락으로 아무렇지 않게 튕겨내겠지. 하지만 또 개미 한 마리가 아닌 100마리, 1000마리 개미 군단이라면? 아, 이건 너무한거 아니냐고잇시팔! 쓰잘데기 없는 가정과 질문은 끝이 없다. 중요한 것은 '왜 벌레가 무서운가' 따위의 시답잖은 추상적인 질문이 아니라 당장 직면한 벌레의 처리다.
벌레가 나타날 때마다 매번 그 자리에서 도망가거나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샤워실에 대왕 바퀴벌레가 들어왔다고 해서 중국 노래가 흘러나오는 폰을 들고 빨개벗은 채로 뛰쳐나가 프리즈 돈 룩 마이 리틀 프레셔스 페니스! 를 외치며 기숙사 방까지 뛰어갈 수는 없다. 고작 정수기 위의 새끼 바퀴벌레를 보고 들고 있던 컵라면을 냅다 갖다 버리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벌레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손 한번 휘둘러 아무렇지 않게 죽이고는 치워버리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벌레 사체의 찌꺼기를 처리하는 일이 벌레 자체보다도 찝찝하고 얼굴 찡그려지는 무서운 일이라, 제일 좋은 해결방안은 그냥 조금 떨어져서 그 벌레가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석이나 틈 사이로 쏙 들어가 애써 모른척할 수 있는 미봉책 같은 상황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을 사냥하는 매가 두려워 몸뚱이는 놔두고 풀섶에 대가리만 처박는 꿩마냥 존나 바보 같은 대응책이다! 하지만 바보 같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질끈 감고 아무것도 안하는 짓은 비단 벌레를 마주할 때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 인간관계에서 무언가 '응? 시발 이건 아닌데요?' 하는 문제들이 불쑥 생겼을 때도 나는 큰 바퀴벌레를 본 것 마냥 잠시 떨어져 눈과 귀를 막고는 내 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실제로 사라진 것도 아닌데!)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인지 모르겠지만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불쑥 좆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꺼내며 집요하게 공감을 요구할 때라든지 미안해하며 사정해도 모자랄 부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히 들어주어야 하는 것처럼 말할 때라든지 등등 벌레를 봤을 때의 역함을 느끼며 속으로 '이 새끼 뭐야, 인성 문제 좆되네?'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바로 그 때다.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그러한 혐오감을 느끼는지에 대한 기준은 왜 벌레를 무서워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불분명한 것처럼 딱 잘라 말하지는 못하겠다. 대개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는, 알아가는 단계인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이 벌레 같은 문제가 생기곤 한다. (물론 나도 누군가에게 벌레 같은 좆같음을 선사했을 순간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이런 문제 앞에서 야이씨발색갸! 하고 불같이 화를 내거나, 껄껄껄 방금 막 진명거름망에 걸리셨습니다 제 인생에서 걸러져 주시지요? 하고 칼같이 관계를 끊어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어찌 됐든 그렇게 행동했을 때의 결과가 단순 벌레 사체를 넘어서 찌부된 벌레가 찌꺼기는 줄줄 흘리면서 분리된 몸통은 살아 파르르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같은 찝찝함 존나 MAX의 감정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소심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저 '으응..난 모르겠네..' 하고 미적지근한 자세로 시종일관하는 것이 나 같은 사람에게는 최선이다.
그래서 그런 태도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좋은 영향을 미쳤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을 맞춰가는 과정 없이 새로운 사람과 깊게 사귀지 못하는 것은 뻔한 결과다. 대부분 그새끼 존나 별로던데, 하며 내가 거름을 당하는 것으로 끝을 맺곤 한다. 그런데, 그게 나쁜 일인가? 내 딴에는 벌레 같은 관계가 감정의 사체를 치울 필요도 없이 구석의 틈 사이로 들어간 것을 넘어서 아예 사라져 주는 건데, 아 존나 아리가또고자이마스. 그리고 이런 소극적이고 소심한 태도가 만든 극단적인 인간관계에도 별생각 없이 낄낄거리며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는 지금의 소중한 관계들에게도 진짜 진심으로 존나 아리가또. 앞으로도 계속 몸이 부르르 떨리고 얼굴이 구겨지는 관계를 마주하면, 설령 정답이 아닐지라도 눈과 귀를 막고 우두커니 서있을게.
아, 물론 단순히 무시무시하기만 한 벌레가 아니라 밤잠 설치게 하는 모기처럼 직접적인 좆같음을 선사해주는 관계에 대해서는 사체의 찌꺼기고 나발이고 당장 스파이크를 날려 악즉참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