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뿐(ぷんぷん)!

일시적 감정 그것은 지진!

by 진망구스

뿐뿐!

바로 어제 잠들기 전, 여느 때와 같이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도중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실연 쇼콜라티에' 라는 일본 드라마의 한 장면인 이시하라 사토미 배우의 짧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을 틀자마자 카~와~이~ 하는 큰 소리에 어이어이 얏바리 니혼 드라마 오버가 너무 심하구만, 하고 다른 영상으로 넘기려다 44초짜리 짧은 분량이라 넘기기도 귀찮다싶어 아무 생각없이 보던 중이었다. 이시하라 사토미가 진열대의 디저트를 보며


"갸또 쇼콜라랑 마카롱을 섞은 건 비겁해, 뿐뿐!"

하고 검지로 허공을 쿡쿡 찌르는 손짓을 하는데,


와!

뭐냐 이 큐티 다이너마이트는? 이 대사를 듣고 남자 주인공인 마츠모토 준 배우(일본 문화를 잘 모르는 나도 이름은 한번쯤 들어본 일본 아이돌 그룹 '아라시'의 멤버이기도 한)가 컥 하는 표정을 지으며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손짓과 함께 띠용~하는 과녁에 화살 맞는 효과음이 나오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마츠모토 준과 똑같이 오른손으로 가슴을 움켜잡았다. 헤헤헤 거리며 존나 바보같은 표정으로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듯 실연 쇼콜라티에 클립 영상을 보다가 잠들었는데, 오늘 하루종일 뜬금없이 그놈의 뿐뿐이 떠오르는 거다! 옷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점심 메뉴를 고르면서 두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마다 '갸또~쇼콜라또 마카롱 어쩌구 뿐뿐' 하는, 상황에 그닥 맞지도 않은 그 대사가 자꾸 떠오르더니 급기야 혼자 속으로 '오므~라이스또 치즈 철판 볶음밥을 섞은 건 비겁해 뿐뿐' 따위의 대사를 되뇌는 초 병신같은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실연 쇼콜라티에를 정주행 해야 이 빌어먹을 뿐뿐 저주에서 풀리겠다는 것을 직감하고 포털 사이트에 이 드라마를 검색해보니 네이버에서 11화 분량에 한 화당 1,100원, 총 12,100원에 볼 수 있길래 결제하려다가, 실연 쇼콜라티에가 왓챠플레이에 업로드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방대한 양의 영화와 드라마, TV프로그램을 제공하는 OTT서비스 왓챠플레이의 프리미엄 이용료가 한 달에 12,900원이여서 '뭐야, 이게 훨씬 낫네' 하고 이용 신청을 하려다 또 손이 멈칫했다. 사실 이미 타사 서비스인 넷플릭스를 이용중이고, 그마저도 매달 돈만 빠져나가고 잘 보게되지 않아 왓챠나 웨이브 등 다른 서비스는 절대 이용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인데 하필이면 이 실연 쇼콜라티에가 넷플릭스에는 없는거다! '쯧' 하고 네이버로 돌아서는데 또 12,100원이 눈 앞에서 알랑거렸다. '네이버-왓챠플레이-넷플릭스' 라는 일종의 사고 버뮤다 삼각지대에 빠져 망설이던 와중에도 머릿속에는 '넷플~릭스또 왓챠플레이를 섞은 건 비겁해 뿐뿐'이 맴돌아 끙끙거리다 결국 아~잇씻팔, 진행시켜! 하고 왓챠플레이까지 이용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까지 고민할 문제는 아니긴 하다. 뭐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를 번갈아가면서 이용해도 되고, 평소에 길가다 아무 생각 없이 떡볶이, 오뎅, 델리만쥬 등 군것질을 하는 것처럼 그냥 네이버에서 결제해서 보면 될 문제다. 내 사고의 흐름에서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부분은, 이시하라 사토미의 '뿐뿐'이라는 화살이 내 심장에 날아와 꽂혀 카..카와이네! 하는 일시적 감정이 되어 나를 뒤흔들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감정이라는게 순간적이고 일시적이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냐만, 잔잔한 호수가 자신을 넘실거리게 만들 작은 조약돌이 언제, 누구에 의해 날아오게 되는 것을 미리 알고 있는게 아니듯이 일상 속의 전혀 예측하지 못한 작은 사건들에서 파생되는 감정에 대해 말하고싶기에 굳이 일시적 감정이라 표현하고 싶다. 지진에 비유할 수 있을까? 지진의 강도는 항상 다르고 사람들은 그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한다. '지진이 났었어?'하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약한 지진이 있는가 하면 말 그대로 내 세상을 뒤흔들 정도로 강해 책상 밑으로 숨든 건물 밖으로 뛰쳐나가든 당장 어떤 행동을 취해야하고 그 후로도 계속 지진이 남긴 여파를 정리해야 하는 강한 지진이 있다. 이를테면 뿐뿐은 근처에서 터뜨린 큐티 다이너마이트가 만들어낸 한.. 4에서 5정도 강도의 지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별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계속 왓챠플레이를 이용하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어떤 사건의 중요도, 크기와 일시적 감정이라는 지진의 강도가 꼭 비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와 이건 정말 좆됐는데 진명아? 할 정도로 큰 위기가 터진 순간, 예들 들면 작년에 출국 날짜를 헷갈려서 출국 전날에 친구들과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술을 쳐먹고 새벽 4시에 귀가해 곯아떨어져 오전 비행기 뜨기 얼마 전에 눈을 떴던 초 병신같은 상황에도 '으응, 그냥 좆되게 내버려둬.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엉덩이나 벅벅 긁으며 초연할 때가 있는 반면 어떤 이성이 와서 'oo버스 정류장이 어디에요' 같은 아무런 의미 없는 말 몇마디를 건네는 정말 사소한 일에도 쿠구궁 강도 9짜리 지진이 일고 머릿속에 왱왱 비상벨이 울리며 온갖 의미를 부여하는 호들갑을 떨면서 '침착해! 시발 혹시라도 잘 보일 수 있는 건덕지를 찾아봐!' 같은 별 지랄을 혼자 며칠동안 떨게 되는 때도 있다. 어쩌면 사람에게 있어 사건의 중요도나 크기가 정해지는게 일시적 감정의 발화보다 선행되는 일이 아니라 일단 감정이 화산 터지듯 분출되면 그 강도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사실 좆된 일은 내게 있어 좆되든 말든 하는 일이었고 아무런 의미 없는 말 몇마디는 속 깊은 곳에서 그토록 제발, 제발! 했던 말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문제는 이 큰 지진같은 일시적 감정에서 비롯된 지속적인 행동이 내가 이성적으로 세워두었던 계획을 완전히 틀어놓거나, 계획에 없던 일을 만든다는 거다. 분명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아예 건드리지도 않거나 한다고 해도 회생 불가능한 쓰레기처럼 처리해 놓는다든지 (feat.기말고사), 이제 매월 잘 보지도 않을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의 이용료를 지불하게 된다든지 (제일 병신같은건 막상 해지하려고 하면 또 아 저거만 보고..할게 안봐도 비디오라는 거다) 등의 골칫덩어리가 되는 거다. 물론 순간의 감정이 행동의 방향성을 결정하는게 병신같은 일이라고 일반화를 하려는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해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구나 많은 순간에 그렇게 하고 있고, 또 의외의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때도 많으니까. 다만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것은 그 결과가 대부분 븅신같은 쪽이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어떤 일 때문이든 강도 7이상의 큰 지진이 왔을 때는 허둥지둥 아이고 뭘 해야하나 하지말고 머릿속이든 머릿밖이든 어디 잠깐 피해있을 만한, 지진대피소 같은 장소를 찾아 도망가자는 거다.


물론 뿐뿐 같은 귀여운 지진들에 대해서는 실실 쪼개며 일시적 감정이 이끄는 대로 휘둘리는 것도 나름의 묘미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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