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by 재윤

아, 오늘은 글을 쓰기가 너무 싫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조차 글로 적어 내며 오늘도 글쓰기를 실천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몇십 년 동안 글을 썼다는데, 그 정해진 루틴이 지루할 법도 하지만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하기 싫은 날도 분명 있었을 텐데, 그는 결국 책상 앞에 앉았을 것이다. 오늘의 나도 그 정도는 해냈다고 스스로를 설득해 본다.


오늘도 영어 수업이 끝난 뒤 26세, 37세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 가서 담소를 나눴다. 꼰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최대한 경청만 하려 했지만, 가끔 불쑥 튀어나오는 인생 이야기가 분위기를 흐린 건 아니었을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잠깐 후회가 밀려온다. 뭐, 어쩌겠나. 나이를 이만큼 먹고 경험이 쌓인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래도 길게 늘어놓지 않고 짧게 치고 빠졌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 작은 위안을 준다.그래도 고마웠던 건 그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줬다는 사실이다.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꾸준함에 대해 잠깐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 짧은 말에 담긴 무게를 그들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37세 남자 선생님은 영어를 제법 하신다. 기초반에 함께 있다는 게 오히려 내가 영광일 정도다.


각자 공부하는 이유를 묻고 그 답을 듣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숙연해졌다. 자기 삶에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오히려 내가 더 많은 도전과 영감을 받는다. 어렵더라도,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이런 사람들을 보며 다시 떠올리게 된다.그분은 대기업을 다니다 퇴사했고, 하와이에서 남은 생을 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영어를 배우는 목적은 조금 더 시사적이고 전문적인 대화를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딱 그 정도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이미 더 높은 곳을 향해 자신을 갈고닦고 있었다. 만약 이게 경쟁이라면 참 숨 가쁜 삶일지도 모르겠다는 씁씁함도 함께 밀려왔다. 그 씁씁함의 정체는 ‘나는 왜 이렇게 늦었을까’라는 질문이었고, 그 질문은 늘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각자의 목표는 다르고, 우리는 각자 감당할 수 있는 무게만큼만 살아가면 된다. 그 목표를 조용히 응원하고, 나는 내 삶의 목표에 집중하면 그뿐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게 내가 얻은 삶의 작은 지혜다.27세 여자 선생님은 승무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꿈에 도전하는 모습이 제법 단단해 보였다. 삶을 대하는 태도도 사뭇 진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앞으로의 인생이 괜히 기대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부럽기도 했고, 후회가 스치듯 밀려오기도 했다. 나는 이제야 겨우 깨달은 삶의 태도를 그분은 이미 그 나이에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우리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빨리 실력이 늘고 싶다는 마음이다. 학원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니며 공부하는 나와 두 사람은 각자의 목표는 달랐지만, 그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같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라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을까. 이 질문을 던지면서도 사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래 맞다. 꾸준히 계속하면 된다. 우리도 결국 그 이야기를 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아주 짧게 그 말을 꺼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다만 그 답이 느리고, 지루하고, 당장 결과를 보여주지 않을 뿐이다. 글쓰기도 그렇고, 영어 공부도 그렇고, 삶도 그렇다. 오늘도 하기 싫었지만 이렇게 한 줄이라도 써냈고, 그 한 줄이 쌓여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


그러니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잘하려 애쓰지 않아도,

오늘을 살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