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지나가는 중이다.

by 재윤

애써 잘 지내려고 하루 종일 바쁘게 살다가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공허해진다. 오늘도 숨 돌릴 틈 없이 사람을 만나고 일을 처리하다 돌아와 보니 벌써 밤 열두 시를 훌쩍 넘겼다. 아마 글을 쓰고 책을 읽다 보면 한시, 두시는 가뿐히 지나갈 것이다. 요즘은 억지로라도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들을 해내려 한다.


행복한 날도 있고, 여전히 불안한 날도 있다. 글 역시 그날의 마음을 따라간다. 어떤 날은 누군가에게 용기를 건네는 글이 되었다가, 또 어떤 날은 이렇게 후회와 미련을 조심스레 적어 내려가는 글이 된다.


나는, 잘 살아내고 있는 걸까.


더 이상 아프기 싫어 누군가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또 상처받을까 봐, 또 버림받을까 봐. 무엇보다 그동안의 내 상황이 누군가를 만날 여유가 아니었던 것도 사실이다. 예전에 매형은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다시 찾아올 수 있다며 나에게 용기를 건넸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내 인생에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애써 사랑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 나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정말 꿈같은 시간을 지났다. 희망이었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신기루 같은 시간이었다. 나도 다시 사랑할 수 있구나. 나도 이제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구나.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매 순간이 그저 행복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줄 수 있는 마음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저 고마웠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사랑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시간을 지나 마주한 현실은 내가 끝내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또 좌절하고, 또 낙담했다. 나는 잘 살아온 걸까. 수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메아리는 늘 공허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내 탓도, 그의 탓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했을 뿐이다. 시간이 이만큼 흘렀는데도 마음은 좀처럼 편안해지지 않는다.


라라랜드라는 영화가 있다. 사랑하던 두 사람은 각자의 꿈을 위해 결국 헤어짐을 선택한다.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새드엔딩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각자의 꿈을 이뤄낸 해피엔딩이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내 인생은 아직 내가 원하는 꿈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언젠가 시간이 더 지나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면 과연 나는 내 삶을 새드엔딩이라 말하게 될까, 아니면 해피엔딩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글을 여기까지 써 내려오다 문득 이런 결론에 닿았다. 엔딩은 지금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지금의 나는 사랑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었던 사람이고, 좌절한 사람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아직 결말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오늘의 나는 잘 살아낸 것도, 잘못 살아온 것도 아니다. 그저 끝까지 도망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통과하고 있는 중일 뿐이다.


다만, 이렇게 밤이 깊어질수록 마음 한켠이 조용히 젖어드는 순간들이 있다.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만은 숨기지 못할 때가 있다.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사라지지 않는 감정이 있다는 것도,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것도 이제는 인정하게 된다.


언젠가 이 시간을 돌아보게 될 때 내가 선택했던 모든 것들 앞에서 후회보다 감사가, 자책보다 너그러움이 먼저 나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날의 나는, 그리워할 줄 알았던 오늘의 나를 조용히 안아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면 나는 충분히 잘 살아낸 것 아닐까.


오늘은 여기까지다.

오늘도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