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할 수 있는 삶

by 재윤

좋은 아침이다.
어제는 잠을 설쳤다. 역시나 그리움이 사무친 야심한 밤에 글을 쓰면, 그 여운이 남아서인지 쉽게 잠들지 못한다. 새벽 두 시에 겨우 잠들었고, 여섯 시가 되자마자 눈이 떠졌다.

오늘 아침, 정확히 말하면 새벽 한 시에 올렸던 어제의 글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다. 글 속의 나는 많이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말을 건넸다. 많이 힘들었냐고. 그 시간들을 그래도 잘 버텨내 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내 마음을 조심스럽게 만져 보았다.
이런 글들이 쌓여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장르도 불분명하고, 뚜렷한 목적도 없는 글들. 그 글들이 모여 상처받고, 또 웃고, 다시 마음을 먹고 다짐하며, 사랑하고 아파하는 사람 하나가 이렇게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과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정답지가 없다. 한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 내린 선택이, 그 사람에게는 정답이 될 뿐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시기와 질투가 있고, 반목과 갈등은 늘 존재해 왔다.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 사이에서도 그렇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혹은 내가 그 일을 잘 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쉽게 나만의 정답을 내리지 못한다.

내리지 못하는 선택조차 하나의 답일 수 있겠지만, 분명한 건 세상에 완벽한 타이밍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정한 그 시작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숭고한 정답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 번쯤 꼭, 이 지점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나는 적어도 그런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려 애써왔던 것 같다. 나는 엄마의 이혼을 응원했고, 재혼의 결심도 존중했다. 누나의 결혼 역시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들이며, 누나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사랑하는 친구가 어린 시절 겪었던 끔찍한 고통 앞에서도, 내 마음속에는 그 어떤 편견도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네가 그런 입장이었으니까 가능한 거 아니냐”고. 하지만 아니다. 내가 그런 입장이어서가 아니다.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큼은, 그들의 조건이나 상황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다. 그것이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한편으로는 냉정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책임은 각자의 몫이다. 선택은 그들이 했고, 나는 나의 몫을 다하면 된다. 나는 그들을 응원하면 그뿐이다.

다만 세상에는 조금 다른 사람들도 많다.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시기하며 꼬투리를 잡아 비난하고, 정작 본인이 같은 상황에 놓이면 숨거나 회피하고 거짓을 말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은, 그런 내로남불의 얼굴을 한 사람이다.

나 역시 이렇게 아파하지만, 이 결과 또한 내 선택의 몫이다. 아프겠지만 견뎌야 하고, 받아들여야 할 내 몫이다. 그렇게 견디고, 또 하루가 시작된 오늘을 살아내겠지.

오늘은 조금 피곤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일찍 집을 나섰다. 오늘도 내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하루다. 영어도, 책도, 글도 여전히 나와 함께 오늘을 보낼 것이다.

주말이다. 집에만 누워 있기보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그 일 하나쯤은 꼭 해보시길 바란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오늘도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