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도 괜찮은 사람일지도.

by 재윤

한동안 자존감이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내가 처한 환경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려 애써 보아도,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의 공허함과 자책이 남아 있었다. 씩씩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도 남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안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말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의 글들을 돌아보면 유독 상처와 고통을 어루만지는 위로의 글이 많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연재 역시 사실은 내가 나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그 위로의 끝에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함께 잠시 쉬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연재를 한동안 멈췄던 적도 있었지만, 요즘은 글을 쓰는 것 말고는 내 마음을 내려놓을 곳이 없어 다시 조용히 글로 나를 위로하고 있다. “묵직한 위로네요.” 독자님의 댓글 하나가 그날 하루를 버티게 해주었다. 세상은 이렇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상처를 보듬어 주기도 한다.


글과 책, 그리고 원래는 러닝이었다. 내 삶을 지탱해 주던 세 가지였다. 요즘은 날씨와 무릎 탓에 달리기를 쉬고 있다. 그 대신 골프를 친다. 나는 운동을 조금 하는 편이다. 탁구도, 테니스도, 스쿼시도, 축구도, 당구도.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함께하는 사람이 재미를 느끼게는 한다. 그런데 유독 골프만큼은 배우고 싶지 않았다. 운동이라기보다는 비즈니스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고, 그 안에 묘한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 “골프 치세요?” 하고 물으면 늘 애둘러 대답했다. 골프가 나에게 맞지 않는다거나, 굳이 하지 않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곤 했다. 그랬던 내가 이제야 골프를 배우고 있다. 한 달쯤 되었다. 레슨을 받고, 매일 시간을 내 연습을 한다. 생각보다 어렵다. 작은 공 하나가 뜻대로 맞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괴감이 밀려온다.


그러다 레슨을 해주시는 프로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해온 그분은 젊고 당차며 매력이 넘치지만,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겪은 이야기들은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그 순간마다 내 무지함이 부끄러움으로 바뀐다.


요즘 나는 그 프로님 덕분에 많은 용기와 자신감을 얻고 있다. 다른 분들은 보통 15분 레슨을 받는데, 유독 나에게는 30분을 잡아주시고, 때로는 레슨 시간이 아님에도 지나가다 들러 자세를 잡아 주시곤 한다. 고마운 마음에 식사도 몇 번 대접했고, 작지만 세심한 선물도 건넸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잘해주면 괜히 이유가 궁금해진다. ‘나 같은 사람에게 왜?’


그래서 어느 날, 용기를 내 물었다.
“선생님, 왜 저에게 이렇게 잘해주시나요?”


잠시 후 돌아온 대답은 나를 그대로 세워놓았다.
“재윤님이 잘 하시니까요.”


선생님의 말을 이어 요약하자면 이랬다. 우리가 나눈 대화들, 묵묵히 연습하는 모습, 무엇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어주는 태도가 좋았다고 했다. 하루 일과를 묻기에 일을 하고 남은 시간에는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영어 공부도 시작했다고 했다. 보통 이 나이 또래는 그냥 되는 대로 사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지금이라도 삶을 돌아보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도 했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그 사실 하나만으로 요즘의 삶에 다시 용기가 생긴다. 내가 중요하게 여겨온 가치관이 누군가에게는 존중으로 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조용히 뿌듯함도 따라온다.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가능한 한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려 애써 왔다. 아마 그 태도가 선생님의 경험과 삶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전해졌던 건 아닐까, 혼자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세상살이가 참 그렇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위로를 받고, 감동을 받아 댓글을 남기면 어김없이 따뜻한 대댓글이 돌아온다. 내가 어디에서 이런 위로를 또 받아볼 수 있을까. 세상은 정말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생각에도 힘을 얻는다. 지금 내가 아프다고 끝이 아니고, 지금 내가 힘들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것. 어떤 순간에, 어떤 사람을 통해 다시 용기와 희망이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 그 희망을 붙잡고 살아보자. 어쩌면 이런 마음들이 쌓여 앞으로 내가 쓰는 글이 조금은 더 밝아질지도 모르겠다. 유독 눈꺼풀이 무거운 밤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조용한 밤이 있어 감사하다.


모두 평안한 밤 되시길 바라며,
오늘도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