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면 안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제일 싫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말을 건네면 십중팔구 돌아오는 대답이 있다. “꼰대.” 사람들은 권위가 있어 보이는 이들의 말은 곧잘 듣지만, 나와 비슷해 보이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사람이 건네는 조언은 쉽게 흘려버린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랬다. 그 나이 때 어른들이 진지하게 꺼내는 말들이 그저 뻔한 소리처럼 들렸고, 뭘 저렇게 심각하게 이야기하나 싶어 귀를 닫아버렸다. 그리고 깨지고 다치고 돌아오다 보니, 어느새 나도 인정하게 되었다. 그 말이 맞았다는 걸.
어쩌면 이건 인간이 가진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어릴 때부터 그런 조언을 듣고 자란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이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금 더 빨리 가고, 조금 더 단단해지는지도 모른다. 손흥민 선수의 성장 과정을 보면 늘 그의 아버지가 함께 등장한다. 아마 축구 기술보다 먼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르쳤을 것이다. 지난 글에서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이 부럽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건 바로 그런 밑거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겐 없었고, 그들에겐 있었기에 부러웠다는 고백이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은 다르다. 그래서 무엇이 더 힘들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문제가 당신 인생에서 가장 아프고, 가장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이별일 수도 있고, 사업의 실패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잃은 상실일 수도 있다. 이렇게 문장을 이어가며 글을 쓰고 있지만, 내가 모든 걸 안다고, 당신의 마음을 온전히 위로할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 모든 상황의 중심에는 무조건 당신 자신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
자신을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고, 운동을 아무리 해도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아픔은 밀려온다. 맛있는 걸 먹으라는 말조차 입맛이 없는 사람에겐 잔인하게 들린다. 그래서 정말 아픈 사람에게는 사실 어떤 위로도 필요 없다. 흔히 말하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란 말.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말. 하지만 이런 말조차 어떤 날에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아무 의미 없이 허공을 맴돌다 다시 나에게 되돌아오는 말처럼.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아파해라. 울어도 되고, 화내도 된다. 대신 그 아픔을 온전히 혼자 견뎌라. 시간이 오래 걸려도 좋고, 너무 힘들어 죽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딱 한 번은 스스로 이겨내 보았으면 좋겠다. 이별 후 바로 누군가를 만나는 사람도 있고, 아프면 늘 누군가에게 기대는 사람도 있다. 그 선택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방식이 있다. 다만 분명한 건, 그 방식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상처는 다른 상처로 덮인 채 늘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힘들 때마다 타인의 힘에 기대다 보면 정작 스스로 서야 할 순간에 일어나는 법을 잊게 된다. 삶은 함께 살아가지만, 버텨내는 힘은 결국 내 안에서 나온다. 사랑하는 강아지도 수명이 다하면 떠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결국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한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이별의 상실감 속에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조금 빨리 이별했을 뿐이라고. 감정을 다스리고 스스로를 돌볼 줄 알게 되면, 다시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아파하면서도, 다시 살아갈 희망은 남는다.
그래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지금 많이 지치고 힘들다면 꼭 한 번은 이 말을 마음에 담아주길 바란다.
아파해라.
그 아픔도 익숙해진다.
슬퍼해라.
언젠가는 눈물도 마른다.
소리쳐 화내라.
쏟아내고 나면 더는 나올 화도 없어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당신을 그렇게 아프게 했던 문제들이 더 이상 당신을 괴롭히지 못한다는 걸 스스로 느끼게 될 것이다.
미안하지만, 당신은 숭고하다.
정말로 그렇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당신만 모른다. 세상은 당신이 다시 일어서 다시 뛰어갈 그 날을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당신 안에는 늑대가 한 마리 살고 있다. 그 늑대는 행복과 슬픔을 먹고 자란다. 당신은 어떤 먹이를 주고 싶은가. 선택은 언제나 당신의 몫이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이 말을 한 번 떠올려보길 바란다.
오늘도 글 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