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리고 그 ‘알고 있음’은 결국 나를 만들고, 내가 서 있는 세계의 모양을 바꾼다. 너무 명확한 말이지만, 이해했다고 해서 모두가 그에 맞게 살아가지는 않는다.
우리는 종종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완성되기도 전에 선택을 내려 버린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대부분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된다. 그때야 비로소 당시의 나는 아직 충분히 알지 못했다는 사실도 함께 마주하게 된다.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그 자리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깨닫는 일은 사실 특별하지 않다. 사람은 늘 그렇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이미 주어졌다고 믿었던 것의 가치를 뒤늦게서야 알아본다.
하지만 그 깨달음 앞에서 너무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 후회나 자책은 성장을 흉내 낼 뿐, 실제로 나를 앞으로 데려다주지는 못한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을 통과한 이후, 내 안에 무엇이 남았는가다.
경험은 늘 대가를 요구한다. 시간을 내어주어야 하고, 상처를 허락해야 하며, 때로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그 대가를 치르고 나면 분명히 달라진 현재가 남는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이전에는 놓쳤던 마음을 이번에는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결국 아는 만큼만 세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인간은 완성된 상태로 죽지 않는다. 이 명제를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조금 가벼워진다. 지금의 부족함이 나의 실패가 아니라 과정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경험은 중요하다. 아프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이해가 있고, 부서지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 단단함이 있다. 지금의 고통이 나를 힘들게 한다면, 이 한 가지만은 기억해도 좋겠다. 지금은 버거워도, 이 시간은 나를 조금 더 정확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많은 상처와 불안이 있었지만, 그것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들에 감사한다. 고통이 나를 괴롭혔던 이유는 나를 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르게 보게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리고 그만큼만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며,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 이제 나는 조금 더 보게 되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지금 많이 버겁다면, 스스로를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 여기고 있다면, 한 가지만은 꼭 말해주고 싶다. 지금의 당신은 틀린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직 다 알지 못한 채, 배우는 중일 뿐이다.
삶은 늘 뒤늦게 가르쳐 준다. 그래서 지금의 선택이 옳은지, 이 시간이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어 불안해지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시간을 통과한 이후의 당신은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해져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지금의 고민과 흔들림이 헛된 채로 사라지는 일은 없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 부족해도 괜찮고, 넘어지고 흔들려도 괜찮다. 삶은 완성된 사람만을 다음 장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끝까지 버티며 배우려는 사람을 앞으로 보낼 뿐이다.
지금은 잘 보이지 않더라도, 당신의 삶은 분명히 당신을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오늘 하루를 버텨낸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
조금 더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지금보다 덜 흔들리고, 지금보다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날이. 그날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을 살아낼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니 웃어도 된다.
오늘도 당신의 첫번째 삶의 오늘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
당신의 삶을 축복한다.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해 주어 감사하다.
오늘도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