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의 삶을 살아라.

by 재윤

나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삶이 언제든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집이 쉬는 곳이 아니라 늘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사람은 얼마든지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익혔다.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너무 오래 버텨야 했다. 그 시간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었다기보다, 먼저 닳아버리게 했다는 사실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폭주했고, 어머니는 도망쳤다. 나는 어머니를 숨겼다. 정확히 말하면, 그 시간을 견뎠다. 아버지와 대적하며 보낸 10년의 세월 동안 나는 어른이 되기 전에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집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고, 사랑은 늘 긴장 위에 놓여 있었다.

그 이후의 삶이 순탄했을 리 없다. 사업은 실패했고, 우울은 깊어졌으며, 술은 나를 잠시 숨 쉬게 해주는 유일한 도피처가 되었다. 알코올 중독이라는 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을 즈음, 나는 이미 꽤 망가져 있었다. 그래서 말할 수 있다. 나는 지독한 아픔을 겪었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러가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아픔은 사람을 부수기도 하지만, 끝내 남는 것은 단단해진 감각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은 전부 선택의 문제였다는 것도. 아픔에 젖어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회복을 선택할 것인지. 그 선택만큼은 누구의 몫도 아닌,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어릴 적 환경은 분명 사람을 만든다. 지금도 내가 가장 부러운 사람은 티 없이 맑은 사람이다. 세상에 완전히 맑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적어도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언제나 나를 부럽게 만든다. 그리고 그 맑음의 중심에는 대개 부모의 사랑이 있다.

나는 나의 어머니를 사랑한다. 다만, 그녀를 지키기 위해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감내해 왔다는 사실이 어떤 날에는 견디기 힘들었다.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온 지난 세월이 부정당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고, 그래서 한 번쯤은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 말 하나면 내가 버텨온 시간들이 의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내 그 말은 오지 않았다.

그러다 책을 읽다 이런 문장을 만났다. 사람은 각자의 생각과 입장이 있고,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다는 말이었다. 그 문장을 통해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던 어머니는 있는 그대로의 어머니가 아니라, 내 기억과 감정이 만들어낸 하나의 이미지였다는 사실을. 그 순간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무너졌고, 더 중요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결국 선택한 것은 나였고, 그 결과는 어머니의 탓도, 나를 괴롭혔던 아버지의 탓도 아니었다. 그저 내 삶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티 없이 자란 사람들이 부럽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부러움으로 삶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나는 이제 누구에게도 핑계를 대지 않는다. 과거를 원망하지 않고, 상처를 무기로 삼지도 않는다. 내 삶을 내가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지금의 나,
구재윤이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인생을 상담한다. 조언을 하고, 해답을 건네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정리해 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자신의 삶 앞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내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었다. 글쓰기는 나를 대상으로 하는 상담이라는 것. 나에게 말하듯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힘든지, 왜 무너졌는지를 차분히 적어 내려가다 보면 감정은 정리가 되고, 삶은 조금씩 객관화된다.

내가 글쓰기로 치유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이 방법으로 숨을 돌릴 수 있었다면, 당신도 한 번쯤은 가능성을 열어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당신의 아픔의 크기는 오직 당신만 안다.
깨지고, 부서지고, 그리고 다시 살아라.

숨이 붙어 있는 그 순간까지 기회는 언제나 당신에게 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당신이 그토록 원했던 자유로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길 바란다.

하다 보면 되더라.
계속 하다 보면, 결국 꼭 그렇게 된다.

"이제 당신의 삶을 살아라."

오늘도 글 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