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나를 선택하는 유일한 방법.

by 재윤

집에 막 들어와 글을 쓰려고 하니 졸음이 밀려온다. 몇 분을 책상 앞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머릿속이 비어 있는 상태에서 억지로 무언가를 꺼내려 하면 늘 실패했다. 그래서 오늘도 먼저 첫 문장부터 적어 본다. 다행히 낮 동안 스마트폰에 메모해 둔 문장이 있다. 요즘은 그 작은 메모들이 나를 다시 책상 앞으로 불러온다.


요즘 내 하루는 유난히 조용하다. 술을 끊고 나니 세상이 맑아졌다. 소리가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불필요한 잡음이 사라진 느낌이다. 생각은 다시 긍정적인 자리로 돌아왔고, 머릿속에 엉켜 있던 것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는다. 뇌가 씻겨 내려간 것 같은 기분, 다시 태어났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의 변화다. 얼마나 지독하게 나 자신과 싸웠는지, 이 과정을 겪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그저 감사하다.


나는 이 승리를 잃고 싶지 않다. 금주 이후의 나는 분명 이전보다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 이 말이 자만처럼 들릴까 잠시 망설였지만, 사실이다. 다만 이 변화가 특별한 재능이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내가 해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술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실패해도 좋으니 여러 번 시도해 보길 바란다. 그 끝에는 지금의 나처럼, 조금은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이 서 있을 테니.


이렇게 마음이 차분해지자 자연스럽게 다시 손이 가는 것이 있다. 예전처럼 조급해서가 아니다.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저 나를 돌보고 싶어서 찾게 되는 것, 나에게 그것은 늘 책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책의 중요성을 말해 왔다. 수억 원의 빚을 지고 차라리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하던 순간마다 나를 붙잡아 주었던 것도 결국 책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쉼 없이 책을 읽으라고 떠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누군가에게 책을 권할 만큼의 전문가는 아니다. 고작 900권이 조금 넘는 책을 읽었을 뿐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 많은 책을 읽고도 남들이 말하는 ‘성공’을 이루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생책을 묻는 질문 앞에서는 나는 늘 잠시 멈춘다.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살고 각자의 시기를 지난다. 내가 절망 속에 있을 때 나를 살려 준 책이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을 수도 있다. 그 시기의 나에게는 위로가 필요했고, 삶을 이해할 언어가 없었기에 그 문장들이 내 마음에 닿았을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고전이, 누군가에게는 에세이가, 또 누군가에게는 문제집 한 권이 인생책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하려는 이 책 역시 절대적인 정답으로 꺼내고 싶지는 않다. 다만 지금 이 시기의 나를 조금 더 숨 쉬게 해 준 책이라는 점, 그 정도면 충분하다.


오늘 이야기할 책은 『렛 뎀 이론(The Let Them Theory)』이다. 이 책은 놀랄 만큼 단순하다. 핵심은 단 하나, ‘내버려 두자’라는 말이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타인의 행동을 바꾸려 애쓰는 순간, 당신은 스스로를 돌볼 기회를 잃는다.” 이 문장을 읽고 나는 한참을 멈춰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타인을 이해하려는 데 쓰고, 설득하려는 데 쓰고, 바꾸려는 데 써왔는가. 그러다 정작 나 자신은 방치한 채 살아간다. 렛뎀 이론은 무책임함을 말하지 않는다. 포기를 말하지도 않는다. 이 이론이 말하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것에서 나를 분리하는 용기다. 우리는 타인을 통제할 수 없고, 변화를 강요할 수도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해 왔는지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선택은 결국 내가 한다. 누군가의 말에 휘둘렸든, 상황에 몰렸든 최종 결정은 언제나 내 손을 거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오히려 단순해진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이 문장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하면 삶은 조금 편안해진다.


비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나는 그렇지 않다. 그 사실을 붙잡고 괴로워한다고 해서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하지만 선택은 할 수 있다. 지금의 나로 계속 괴로워할 것인지, 아니면 미래의 나를 선택할 것인지. 그리고 그 선택을 위해 오늘 무엇을 할 것인지. 인생은 결국 이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괴롭고 아프고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그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내 삶을 다시 채운다. 떠난 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은 그의 선택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선택 이후의 나를 돌보는 일뿐이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인 이후 사람과의 갈등에 오래 머무르지 않게 되었다. 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을 때 분명 아팠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그래서 후회는 없다. 결정을 되돌리려 애쓰는 대신, 그 결정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녀의 삶을 축복하고 응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선택 이후 나는 다시 내 삶의 주인이 되었다.


진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그제야 이해했다. 누군가를 바꾸려 애쓰는 삶에서 나를 돌보는 삶으로 방향을 틀었을 뿐인데, 삶은 오히려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 평온은 우연이 아니다. 내버려 둘 것을 내려놓고, 돌봐야 할 나 자신을 다시 선택한 결과다.


그래서 요즘 나는 무언가를 바꾸려고 애쓰지 않는다. 사람을 설득하려 하지도 않고, 상황을 통제하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몸이 무너지지 않게 움직이고, 마음이 마르지 않게 책을 읽고, 다시 흔들리더라도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렛뎀 이론이 내 삶을 바꿨다기보다는, 이제야 나를 돌보는 방법을 조금 배운 것에 가깝다.


만약 당신이 삶의 의미를 잃은 것 같고, 누군가의 말과 선택에 마음이 계속 흔들리고 있다면, 그리고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이 필요한 시기라면 이 책을 한 번 펼쳐봐도 좋겠다. 정답을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당신을 괴롭히던 것들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는 법은 조용히 알려줄 테니.


지금의 나는 이렇게 나를 돌보고 있다.

오늘도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