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수업이 끝나면 매번 프리토킹 시간이 있다. 나는 여전히 영어가 서툴다. 말하자면 영어 벙어리에 가깝다. 그럼에도 매번 입을 연다. 단어를 더듬고,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을 연신 쏟아낸다. 처음에는 창피해서 한마디도 못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생각이 바뀌었다. 틀리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도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더 창피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어떻게든 말을 하려고 애쓴다. 물론 함께하는 선생님들께 죄송한 마음도 있다. 그럼에도 그분들은 늘 너그럽게 틀린 부분을 고쳐주고,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주제가 나올 때, 불쑥 튀어나오는 한국말이 오히려 더 미안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불혹을 넘어 중반에 접어든 나 역시, 창피함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이는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자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도대체 무엇이 진짜 창피한 걸까. 내가 내린 답은 이것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는 태도, 아는 척하며 배우기를 멈추는 자세.
이 지점에서 나는 하나의 단어에 닿게 되었다.
자기인식.
곰곰이 돌아보니, 이 문제는 영어 수업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삶 전반에 반복되어 온 태도와 맞닿아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잘하고 싶으면 일단 시도부터 했다. 그건 분명 내 장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늘 그 다음이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마치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실력은 10인데 태도는 100이었다. 그 순간부터 배움은 멈췄고, 흥미도 빠르게 식었다.
돌아보면 늘 같은 장면이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주변에 사람이 많다가, 시간이 지나면 하나둘 조용히 사라졌다. 내가 가진 것이 쭉정이라는 걸 알아차린 순간, 그들은 말없이 떠났다. 더 늦기 전에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당시의 나는 그 이유를 전혀 몰랐다. 아니, 잘못되었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세상을 원망했고, 사람들을 탓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나 자신과 대화를 시도했고,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빨리 알아본다는 사실을.
이 태도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니, 결국 하나의 감정으로 수렴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강했던 인정욕구였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기타를 치며 무대에 섰다.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주목받고 싶었고, 사람들의 시선이 필요했다. 실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전공자들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음악을 내려놓으면서도, 그럴듯한 변명을 찾아 헤맸다. 어쩌면 실력의 한계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이 성향은 이후의 삶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초반에는 몰입했고, 어느 정도 성과도 냈다. 그리고 늘 같은 지점에서 교만해졌다. 이쯤에서야 나는 인정할 수 있었다. 이 모든 태도는 결핍에서 비롯된 자아였다는 것을. 결국 돌고 돌아, 사랑받고 싶었던 발버둥이었다는 것을.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화보다 연민이 먼저 올라왔다. 나는 나 자신이 조금 가여워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질문에 닿았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자기인식을 깊게 하다 보니, 오히려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겸손이라는 이름 아래, 의욕마저 사라지는 시간도 있었다. 자기인식의 과정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때로는 자신을 너무 몰아붙여 삶의 의미를 잠시 잊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이 문제를 외면한 채 살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나를 데리고 살아가야 했고, 매일 가장 먼저 마주치는 사람 역시 나 자신이었다.
결국 나는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주 늦게, 하나의 답에 도달했다.
꾸준함 속에 겸손을 담는 것.
잘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대신 오늘도 배우는 사람으로 서는 것. 아는 척하지 않고, 모르는 상태를 숨기지 않는 태도. 조금씩, 느리게, 그러나 멈추지 않는 방식. 요즘의 영어 프리토킹은 나에게 단순한 공부 시간이 아니다. 그건 내가 나를 속이지 않는 연습이다. 모르는 채로 서 있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시간이다. 아마 나는 여전히 서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서툼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내가 나를 사랑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오늘도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