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관점이다.

우리는 이미 당첨된 삶을 살고 있다.

by 재윤

지금 나는 싱가포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앉아 있다. 출장 길이다. 6시간의 비행에 대비해 여러편의 영화와 4권의 책을 준비했다. 그리곤 처음 영화를 한 편 봤다. 두 번째 영화를 틀었다가 금세 흥미를 잃었고, 대신 책을 꺼내 들었다. 브런치 독서클럽 이벤트에 당첨되어 선물로 받은 책이다.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작가가 쓴 책이다.


사실 나는 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꽤 유명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도 책 한 권을 출판한 짝퉁 작가 타이틀은 있지만, 이슬아 작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괜히 부끄러워진다. 본인이 직접 출판사를 차리고, 서른 즈음에 집도 사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살아가는 모습이 어딘가 부럽게 느껴진다.


비교는 아니다. 2026년 내 삶에는 비교는 없다. 물론 솔직히 말하면 그런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올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애써 외면한다. 굳이 그 비교의 우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꽤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요즘 내 독서 방식은 조금 두서가 없어졌다. 2월 말에 시작한 책 두 권은 아직 끝을 보지 못했고, 또 다른 책 두 권을 전자책으로 사서 읽고 듣고 있다. 그러다 오늘 <가녀장의 시대>라는 책을 또 시작했다.


지금 나는 다섯 권의 책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읽고 있는 셈이다. 생각해 보니 내 독서 습관에 비추어 보면 ‘두서없다’라는 표현이 맞다. 어디서 주워 들은 이야기인데, 이런 방식으로 책을 읽는 일본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독서법이 오히려 좋다는 이야기였다.


뭐가 더 좋고 나쁘고는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지금 책을 가까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책과 글쓰기가 내 삶을 채워가고 있다. 전문 작가들처럼 글을 써서 생계를 꾸려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이것이 꽤 고상한 취미라는 생각도 든다.


3년 전쯤이었을까. 누군가 추천해 준 책 <해빙>을 사두었지만 한동안 펼쳐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사무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무심코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이 그 책과의 운명 같은 첫 만남이었다. 그 책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있음에 집중하라’는 메시지였던 것 같다.


우리는 늘 없는 것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애쓴다. 나 역시 빚을 갚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남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자책하던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있음에 집중하라’는 메시지가 처음부터 먹힐 리 없었다.


그럼에도 속는 셈 치고 눈을 감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처음에는 없는 것들만 떠올랐다. 그러다 고민 끝에 아주 작은 연필 한 자루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블랙홀에 빠져들 듯 내가 가진 것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연필, 공책, 책상, 핸드폰, 침대, 냄비, 라면, 커피, 샤워기, 이불, 컴퓨터, 책, 바람을 막아주는 월세방....


지금 다 적으려면 아마 이 지면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참 잡다한 걸 많이도 가지고 있구나. 솔직히 말하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없는 것도 많지만 가지고 있는 것도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동안 그것들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있을 때는 소중한 걸 모른다. 맞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이미 있는 것에는 욕심도 미련도 잘 생기지 않는다. 그러다 그 ‘있음’이 ‘결핍’이 되는 순간 비로소 아쉬움이 찾아온다. 대표적인 것이 이별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잘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이 떠나거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그 상실감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된다. 쇼펜하우어였는지 니체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이런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상실은 죽음과 같은 고통이라고. 있다가 없어지는 것은 그만큼 괴로운 일이다.


그때부터 나는 의식적으로 ‘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무의식에 감사함을 심어 넣기 위해 매일같이 확언하고 감사한 것들을 떠올렸다. 그 시간 동안 작은 기적들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끔씩 찾아오는 비교와 결핍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빚을 갚았고, 일도 하나둘씩 풀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글을 마무리하면 결국 이런 결론이 된다. 감사하며 살아라. 있음에 집중해라.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감사함, 그리고 있음. 물론 중요하다. 지금도 실천하고 있고 그 효과도 분명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안에는 반드시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


예전에 나는 정말 간절하게 로또에 당첨되기를 바랐던 적이 있다. 지금도 가끔 로또를 사면서 마음속으로 기도를 한다. 하지만 결과는 늘 똑같다. 5등 한 번을 제외하면 전부 꽝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있다. 신이 아직 나에게 그만한 돈을 담을 그릇이 아니라고 판단했구나.


물론 꽤 진보적인 자기 합리화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사람들에게 로또에 당첨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집을 바꾸겠다. 차를 바꾸겠다. 환경을 바꾸고 싶다는 것이다. 좋은 집과 좋은 차, 그리고 그 속에서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은 마음. 결국 그것도 비교이자 결핍이다.


나 역시 그랬다. 빚을 갚고 좋은 차를 사고 좋은 집을 사고, 남들에게 성공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도 그런 마음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 지금의 삶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원효대사의 깨달음으로 유명한 말이 있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상황은 벌어진다. 내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사실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더 많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오직 나에게 달려 있다. 안 좋은 상황도 내가 좋다고 해석하면 좋은 상황이 된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이다. 그래서 명상이나 운동 같은 것을 통해 현재의 상태를 조금 더 안정적으로 만드는 연습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결국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온다.


감사와 있음.


억지로라도 감사할 것을 찾고, 없어도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마음. 그 생각을 무의식에 계속 밀어 넣어야 비로소 비교와 결핍의 늪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면 숨 쉬는 공기라도 있다고 생각하며 감사하면 된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는다. 태조 왕건이 죽기 전에 남겼다는 말이 잊히지 않는다. “인생 덧없다.” 한 나라를 세우고 권력의 정점에 올랐던 사람이 죽기 직전에 남긴 말이 이것이었다. 그 안에는 인생의 허무가 담겨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끝없는 비교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만이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지금 나는 비행기 안에 앉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 클래스와 이코노미 클래스를 나누어 놓은 이 계급 같은 시스템에 분노하기보다는 옆자리에 아무도 없어 조금 더 편하게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힘 빼지 말자.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책을 읽다가 글이 쓰고 싶어 노트북을 켰고,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꽤 많은 글을 써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비행기는 두 시간을 더 날아가야 한다. 슬슬 엉덩이가 아파온다. 이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까. 잠을 자자니 늦은 밤 도착이라 잠이 꼬일 것 같고, 다시 책을 읽어야 할까. 그래도 오늘 책도 읽었고 글도 두 편이나 썼다. 그러니 이제 조금은 오락거리를 찾아봐도 되지 않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면 아마 곧 도착하겠지.


오늘도 긴 글 읽어봐 주어 고맙다.
글쓰는 재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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